지난 2월, 우리 해군에 마지막으로 남았던 ‘2차 대전형 LST’인 운봉급의 네임쉽인 운봉함이 마침내 ‘전시함’으로서 일반 공개를 위해 진해를 떠났다. 전 세계적으로 이제는 몇 남지 않은데다 현역 운용은 더욱 드문 2차 대전형 LST의 ‘마지막 노병’ 중 유달리 장수한 축에 드는 운봉함의 기념함으로 업종 변경(?)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이번 화에서는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끈 장본인 중 하나지만 빛은 거의 못 본 억울한 배인 LST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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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ST는 2차 대전 영국의 영광과 치욕을 동시에 보여주는 ‘덩케르크 철수’로부터 탄생했다. 원래 적을 바다로부터 공격하려고 만든 상륙함이 ‘바다를 통한 철수’를 통해 탄생했다니 상당히 의아하겠지만, 결국 나가든 들어가든 ‘바다를 통한다’는 사실은 같다.

 

 물론 제대로 된 항구에서 적의 공격을 받지 않는 상황이라면 별 걱정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덩케르크 철수의 대부분이 제대로 된 항구가 아닌 해변에서 벌어진 상황이라는 것. 몇 안되는 간이 부두가 그나마 병력 철수에 큰 힘이 됐지만, 결국 전차나 트럭 등의 중장비는 커녕 소총 조차 대부분 버려두고 와야 했다. 그나마 가장 중요한 사람을 건져온 것이 큰 도움이기는 했으나 여기서 버려둔 장비로 인해 생긴 공백은 이후 영국을 위기 직전까지 몰아넣을 정도였다.

 

 영국 해군과 육군은 이런 경험을 겪고 똑같은 생각을 했다. ‘짐을 많이 싣고 내리면서도 해안까지 접근할 수 있는 상륙함이 있었다면, 덩케르크 철수 자체가 훨씬 빠르고 안전하게 진행될 수 있었는데다 잘 하면 전차같은 중장비까지 실어올 수 있지 않았을까?’ 게다가 나중에 유럽 대륙이든, 이탈리아든, 아시아든 어딘가에 바다를 통한 상륙작전을 벌인다면 이런 상륙함은 더더욱 요긴한 무기가 될 터였다.

 

▲ 썰물로 물이 빠진 모래톱에 얹혀진 LST. 다른 배들이라면 좌초되었다고 표현할 만한 상황이지만 LST는 처음부터 모래톱 위에 올라가는 것도 각오한 배다. 실제로 이 상태에서도 나중에 밀물이 들어와 물이 차면 그대로 빠져 나갈 수 있었다. 그때까지 실었던 물자를 하역하고 가져갈 물자나 인원(주로 부상병)을 실으면 되는 일이었다. 

 

 맨 처음 나온 아이디어는 중남미의 베네수엘라에서 쓰기 위해 설계된 유조선을 개조하는 것이었다. 베네수엘라의 호수에서 사용하기 위해 설계된 이 유조선들은 종종 수심이 급격히 얕아지는 현지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해안까지 접근할 수도 있었다. 세 척의 유조선의 앞부분에 전차를 싣고 내릴 문과 램프(경사로)를 설치하는 개조를 했고, 실제로 이 함들은 1942년 북아프리카 상륙전에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했다. 개념상 이 세 척이 LST의 선조라 할 수 있으며 실제로 나중에는 ‘LST(1)’, 즉 1형 LST로 재분류된다.

 

 그러나 급하게 개조한 것은 당연히 불만족스러운 법. 이 유조선 개조 LST는 원래 내륙에서의 사용을 주목적으로 만든 배들인지라 바다에서 충분한 속도가 안 나왔던 것이다. 결국 영국 해군은 새로운 상륙함을 설계할 필요를 느끼게 됐다.

 

미국의 구원
 하지만 당시 영국은 그야말로 능력의 한계에 봉착해 있던 상황이다. 지중해와 대서양 모두에서 추축군과의 혈투를 거듭하던 영국으로서는 상륙함이 문제가 아니라 독일 및 이탈리아 해군과 싸울 각종 전투함, 그리고 무엇보다도 영국을 먹여살리는 수송선(날이면 날마다 U보트에 의해 가라앉는)의 재건조가 시급한 문제였다. 여기서 등장한 구원타자가 바로 미국이었다. 영국은 미국이 참전하기 전부터 이미 강력한 지원을 받는 상황이었고, 1941년 11월에는 아예 도움을 받는 김에 영국 혼자서는 해결하기 힘든 새로운 상륙함의 개발을 같이 하자는 의견을 건넸다.

 

▲ 미국에서 건조된 최초의 LST인 LST-1. 이미 이 배가 완성된 단계에서 미국은 1,100척이 넘는 거대한 물량을 계획하고 있었다. 애당초 미국은 물량에 대한 단위 자체가 그 어느나라와도 차원이 달랐다.

 

 이 의견은 그러잖아도 참전이 코 앞에 다가왔다고 느끼던 미 해군에서 생각보다 쉽게 받아들여졌고, 곧 ‘대서양 전차 상륙정(Atlantic Landing Craft, Tank: ALCT)’의 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시작 때의 요구조건부터 길이가 91m나 되는 배를 ‘정(Craft)’이라 부르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했고, 곧 ‘함’(Ship)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우리가 잘 아는 ‘전차 상륙함(Landing Ship, Tank: LST)’의 이름이 탄생했다. 초기 명칭에 ‘대서양’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것부터 알 수 있 듯, LST는 상륙함이지만 직접 대서양을 건너 유럽까지 올 수도 있는 그런 배를 목표로 만들어졌다. 간단히 말해 필요하면 수송선으로도 쓸 수 있는 상륙함이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수송선은 항구가 아닌 곳에 배를 대고 물자를 하역할 수 없었고, 해안으로의 상륙을 위한 상륙정은 대서양같은 먼 거리를 자력으로 항해할 수 없었기에 수송선에 실려 와야 했다. 게다가 전차와 같은 중장비를 해안에 직접 상륙시키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LST는 설령 자신이 물자를 싣지 않는다 해도 최소한 다른 수송선 신세를 지지 않고 대서양을 건널 수 있었고, 필요하면 일정한 양의 물자를 싣고 수송선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전차나 트럭과 같은 중장비까지 자기 힘으로 상륙시킬 수 있다. 미국과 영국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유럽 대륙으로의 상륙(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에 이만큼 적격인 물건도 없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이 개발하게 된 LST는 LST(2)가 됐다. 맨 처음 영국이 유조선을 개조한 것이 1이니 그 다음이라는 얘기다. 이후 LST ‘2호’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함정의 하나로 등극하게 됐다. 원래 미국의 LST설계는 85m 길이가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1942년 1월에는 길이가 88m로 늘어났으며 결국 완성된 LST의 길이는 100m까지 늘어났다. 수송능력을 보강할 필요가 빠르게 생겨났기 때문이다. LST, 즉 LST(2)는 1,900t까지의 물자를 실을 수 있었고 이름처럼 전차나 장갑차 등을 싣는 것도 가능했다.

 

▲ 시칠리아 섬의 해안에 전차를 상륙시키는 LST. LST와 같은 상륙함의 존재 자체는 2차대전 중 영국이나 미국만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엄청난 공업력에 의해 실현된 1,000척 이상의 수량은 연합군의 승리에 엄청난 기여를 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상륙작전에서 LST가 공헌한 비중은 대단하다.

 

 사실 크기가 커진 것도 전차등의 장비를 탑재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또 배에 사용된 철판도 외벽은 두께 9.5mm, 선수 아래는 무려 25mm라는 수준이었다. 물론 이것은 상륙작전시 배의 바닥, 특히 앞부분이 그대로 모래톱등에 닿아도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LST의 개발과 설계는 빠르게 진행됐다. 1941년 11월에 사실상 시작된 개발은 1942년 1월에 축소 모형이 나오기에 이르렀고 4월에는 배의 내부, 특히 전차등이 탑재되는 웰 덱(well deck)의 실물크기 모형이 만들어져 각종 테스트가 진행됐다.

 

 재미있는 것은 LST가 나올 때에 느닷없이 18세기의 미 해군 규정이 거론된 것이다. “함선을 암초나 해안에 좌초시킨 자는 처벌받을지어다.” LST는 엄연히 함(Ship)이었으니 이 규정을 적용하려면 적용할 수 있었는데, 비록 워낙 오래 전에 만들어진 규정이라지만 법적인 구속력 이전에 자기 배를 의도적으로 해안에 ‘들이받아 좌초시키는’것을 즐기는 함장은 없을 것이었다. 실제로 1943년 초반에 최초의 LST를 테스트할 때에 설계자가 함장에게 “이 배를 10노트 속도로 몰고 해안까지 전속력으로 돌진하세요”라고 권하자 한참을 머뭇거렸다는 일화도 있다.

 

엄청난 생산
 1942년 10월, 마침내 미국에서 최초의 LST(2)가 건조됐다. 그로부터 두달이 채 못 돼 23척이 실전배치되는 등 빠른 속도로 건조가 진행됐지만, 이것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개발부터 생산까지 1년도 채 안 걸린 이런 초고속 진행은 전쟁이라는 상황에서 상식을 깨는 업무 방식 덕분에 가능했다. 일단 기초 설계가 끝나자마자 조선소들과 생산 계약이 맺어졌는데, 이것은 시제품이 나오기도 전의 일이다. 심지어 관련 원자재중 일부는 설계가 끝나기도 전에 구매가 이뤄졌을 정도였다. 주문 역시 전화로 급하게 이뤄진 경우도 많았고, 수많은 관련 업체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절됐다.

 

 LST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미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공업 저력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미국 역시 기존 조선업계는 수송선이나 항공모함, 구축함등 대형의 함정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으므로 LST를 만들 여력은 부족했다. 하지만 미군 당국은 LST가 매우 얕은 물에서도 움직일 수 있다는데 착안, 강에 인접한 내륙의 비교적 작은 조선소들이나 심지어 원래 배를 만들지 않던 공장에서까지 LST를 만들도록 했다. 물론 완성된 LST가 지나게 하려고 있던 다리를 개조해야 하는 당황스러운 상황까지 있었지만 그래도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 대량 생산되는 LST의 모습

 

 제작기간도 갈수록 단축됐다. 1943년에는 배 한 척을 만드는데 총 4개월이 걸렸으나 1945년에서 이르면 2개월로 단축됐다. 이런 엄청난 ‘속도전’ 덕분에 전쟁중 LST, 즉 LST(2)는 무려 1,051척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이 완성됐다. 이 숫자는 역사적으로도 기록적인 수량으로, 워낙 숫자가 많다보니 제대로 된 이름을 붙일 겨를도 없이 거의 대부분 번호만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대량으로 완성될 수 있던 것은 미해군 당국이 LST에 매우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했기 때문으로, 현대전은 공격무기뿐 아니라 보급과 운반도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줬다. 재미있는 것은 그중 670척이 앞서 언급한 내륙의 조선소들에서 만들어졌고, 가장 많은 수량이 건조된 곳도 바다와는 너무나 동떨어진 인디애나주에 위치한 곳이었다.

 

 기본 디자인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도중에 구조등이 일부 바뀌기는 했다. 491번 LST부터는 주(主) 갑판과 전차 탑재갑판 사이를 엘리베이터로 연결하는 대신 경사로로 연결, 주 갑판에 탑재된 차량이 직접 출입문까지 주행해 신속하게 나갈 수 있게 했다. 또 542번부터는 하루 4,000갤런씩의 식수를 공급할 수 있는 담수화 설비와 3인치 함포 설치등의 개량이 가해졌다.

 

 1,000척이 넘는 엄청난 양이 만들어진 LST(2)에 비해 80척에 불과한 적은 수가 건조되기는 했지만 영국에서는 LST Mk.3이라는 버전을 만들기도 했다. LST(2)에 비해 1,000t 이상 배수량이 더 큰 이 배는 보다 다양한 조건의 해안, 심지어는 바다 위에서도 수륙양용 차량이나 수륙양용 전차를 내릴 수 있도록 설계됐고 그러면서도 속도는 기존의 LST(2)와 같은데다 위에는 5척의 LCA(돌격상륙정)과 한 척의 LCT(전차상륙정)까지 탑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의 조선 설비는 미국에 비해 턱없이 모자랐고, 무엇보다도 고속을 낼 수 있게 하는 엔진이 부족한데다 용접 설비 역시 모자랐다. 결국 증기 엔진을 사용해야 했고(출력은 디젤의 2.5배나 나왔지만 덩치도 거대했다), 또 용접 설비 부족으로 인해 선체 구조물의 상당부분을 리벳으로 연결해 만들어야 했다.
최초의 주문은 1943년 12월에 떨어진 LST Mk.3였지만 영국은 역시 미국이 아닌지라 최대한 서둘렀고 또 캐나다까지 생산에 참가했음에도 처음 세척이 완성된 것은 1944년 12월의 일이었다.

 

 전쟁이 끝날 무렵에야 생산은 최고조에 달했지만 결국 전쟁이 끝날 때까지 원래 계획대로 생산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완성된 Mk.3는 영국군에 나름대로 상당한 공헌을 했고, 전쟁이 끝난 뒤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수가 민간선박으로 불하되어 연안 수송용으로 꽤 도움이 됐다고 전해진다. 물론 영국은 LST Mk.3뿐이 아니라 LST(2)도 다수를 운용했다. 애당초 LST를 미국에서 만들겠다고 한 목적 자체가 있는 만큼 당연한 이야기지만, 113척의 LST(2)가 미국으로부터 영국으로 랜드리스 시스템을 통해 원조되었다.

 

실전에서의 LST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 작전에서 상륙작전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고, 상륙작전에서 LST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1943년 6월 이후에 벌어진 사실상 모든 연합군의 상륙작전에서 LST는 어떤 형태로든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고, 특히 상륙작전 직후 확보한 교두보에 인원과 물자를 나르는 것은 LST가 아니고서는 만족스럽게 할 수 없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과 그 뒤로부터 약 2개월간 벌어진 전투에서 LST의 공헌은 특히 컸다. 상륙지점 주변의 항구도시들의 점령이 늦거나 점령되어도 당장 사용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LST를 통한 해안으로의 물자 상륙은 연합군에게는 말 그대로 생명선이었다. 게다가 LST는 물자를 해안에 내리고 떠날 때 또 다른 ‘필수임무’, 즉 부상병을 영국으로 후송하기도 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D데이로부터 114일(9월 28일)까지 약 41,000명의 부상자가 LST를 통해 영국으로 귀환활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 1950년 10월 13일, 북한 원산에서 상륙작전을 펼쳤던 미군의 LST-742함  

 

 LST는 다양한 용도로 매우 요긴한 배이기도 했다. 애당초 전차까지 수송할 수 있는 넓은 공간을 가진 만큼 사용하려고 마음 먹으면 정말 무궁무진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일부는 개조되어 상륙정 수리함으로 쓰이기도 했고, 또 일부는 개조되어 해상 막사로 쓰이기도 했다. 38척의 LST는 병원선인 LSTH가 되어 부송자 후송에 큰 공헌을 세웠으며, 심지어 몇몇 LST들은 크레인을 추가해 해상에서 전함이나 순양함등의 거대한 함포탄을 보급해주는 보급선의 역할까지 맡기도 했다.

 

 이처럼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 LST이지만, 못생기고 느리다는 점 때문에 별명은 결코 좋지 못했다. ‘크고 느린 표적(Large Slow Target)’이나 ‘크고 고정된 표적(Large Stationary Target)’이라는 별명이 나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별명과 달리 LST는 매우 생존성 높은 배였다. 2차 대전중 격침되거나 파괴된 LST는 40척이 채 안되며, 그 중 적의 공격에 의해 격침된 것은 26척에 불과하다. 1,000척이 넘게 만들어진데다 적이 장악한 지역의 해안에 상륙해야 하는 상륙함이라는 특성을 감안하면 이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2차 대전 이후
 2차 대전이 끝난 뒤에도 LST는 매우 요긴하게 쓰였다. 물론 1,000척이 넘게 만들어진 탓에 신규 생산은 매우 저조했지만 인천 상륙작전등 LST가 활약할 자리는 얼마든지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LST의 쓸모가 입증되자 전쟁이 끝난 뒤에도 새로운 형태의 LST가 개발되고 생산되었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배가 바로 7척의 ‘드 소토’급 LST였다.

 

▲ 드 소토급 LST. 1950년대에 미국이 새로 건조한 개량형의 LST이다. 기본적인 컨셉은 같지만 함수의 형태가 개량되어 더욱 빠른 속도를 발휘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배자체도 대형화 되었을 뿐 아니라 함수의 무장도 기존의 40mm 기관포 대신 3인치포로 바뀌어 상륙작전시의 화력지원용으로도 요긴하게 쓸 수 있었다. 다만 이 배가 건조된 뒤 미해군이 화력지원이 필요할 정도의 전면적인 침공작전을 벌인 일이 없는만큼 3인치 함포는 의외로 쓸 일이 없어졌다.

 

 1950년대 후반에 건조된 이 배들은 최대 속도가 17.5노트까지 올라간데다 내부의 거주성도 높아져 상륙을 위해 탑승한 병력의 생활 여건도 개선됐고, 함수에 설치된 무장도 40mm기관포가 아니라 2문의 3인치(76mm) 함포로 강화되었다. 물론 2차 대전중에 생산된 LST들도 함께 널리 사용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LST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면서 LST에도 1950년대 이후에는 지명을 이름으로 붙여주는 경우가 상당히 늘어났다) LST는 미 해군뿐 아니라 전쟁이 끝난 뒤 수많은 나라들에 공여되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도 적잖은 숫자의 LST를 공급받았고, 해군에서 퇴역한 운봉급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 퇴역한 뒤 보관되어 있던 진해항에서 예인선의 힘을 빌어 김포로 이동중인 운봉함. 퇴역한지 이미 2년이 넘게 지난 시점이었기 때문에 자력항해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상태는 매우 좋아보인다.

 

 LST는 해가 저물던 대영제국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배이기도 했다. 대량의 물자와 인원을 차례차례 독립해가는 식민지들로부터 빼 내는데 LST가 요긴하게 쓰였던 것이다. 한 예로 두 척의 영국군 소속 LST는 영국군이 이집트와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는 과정에서 15차례의 항해를 통해 26,000t의 장비와 물자, 차량등을 철수시킬 수 있었다. LST는 군사적 용도로만이 아니라 민간용으로도 의외로 요긴했다. 전쟁 직후 항구 재건이 이뤄질 때까지 유럽에서는 LST가 차량등의 설비를 실어나르는 중요한 운송수단이 되었던 것이다.

 

현대판 LST?
 1969년, 미 해군은 새로운 형태의 LST인 뉴포트급을 건조해 새로운 LST의 시대를 열었다. 뉴포트급은 그때까지의 LST와는 개념이 완전히 달랐다. LST가 보통 함수에 설치된 출입구를 이용, 직접 차량이 들어가고 나가는 방식인 탓에 함수의 형태도 평평하고 물의 저항을 많이 받을 수 밖에 없는 형태였다. 그 때문에 속도 역시 그리 빠르지 못했다. 반면 뉴포트급은 함수를 보통 수송선과 마찬가지로 만들었고, 함수에 출입문도 설치하지 않아 약 20노트의 속도를 지속적으로 내는데 성공했다(최대 속도는 약 27노트).

 

 

▲ 뉴포트급 LST. 기존의 LST와 달리 함 형태가 보다 전통적인 수송선의 형태에 근접해 있다. 그로 인해 최대 속도 27노트를 발휘하는데 성공하지만, 대신 함수의 출입문이 사라져 차량이 배에서 내리기 위해서는 필요할 때 위 사진처럼 꺼내져 해안이나 항구로 내려지는 경사로를 설치해야 했다. 그래도 우수한 수송능력으로 인해 2002년까지 미해군 현역이었고, 지금도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중고함선을 넘겨받아 현역으로 운용하고 있다.

 

 함수의 형태가 바뀌면서 차량을 싣고 내리는 방법, 특히 내리는 방법이 크게 바뀌었다. 이제 함수 위에 대형의 경사로가 설치되었고, 상륙시에는 이 경사로를 내려 차량이 여기를 거쳐 내리게 한 것이다. 또한 배의 함미에도 출입구를 만들어 항구등에서 차량을 싣고 내리는데 쓸 뿐 아니라 수상에서 상륙정이나 상륙장갑차를 발진시키는데도 쓸 수 있었다. 크기도 대폭 확대됐다. 기준 배수량이 약 4,800t, 만재 배수량은 무려 8,500t에 달한다. 이처럼 커진 것은 갈수록 대형화되는 전차나 장갑차량 및 보급물자의 수요를 맞추기 위한 것이었고, 동시에 해외에 최대한 빨리 물자와 병력을 전개하는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뉴포트급은 2002년까지 미 해군의 현역장비로 활약했으며 실제로 1991년의 걸프전등에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미 해병대의 상륙전 교리가 LHA 같은 항모형 상륙함에 의한 공중강습, 그리고 LCAC에 의한 전차 및 중장비 상륙을 중심으로 하는 ‘초수평선 상륙’쪽으로 무게가 옮겨지면서 어쨌든 해안에 직접 닿아야 하는데다 항공기 운용능력도 약한 LST의 컨셉은 아무리 발달된 뉴포트급 같은 새로운 개념으로도 매력을 잃고 말았다.

 

 이 때문에 뉴포트급 LST 20척은 2002년까지 모두 미 해군에서 퇴역했지만 상당수가 여전히 수명이 남아있던 탓에 브라질이나 모로코, 대만, 멕시코, 오스트레일리아, 페루등 많은 미국의 우방국들에 판매되어 제2의 인생(함생?)을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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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월간 플래툰 2009년 4월호 / 홍희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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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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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자현

    소소

    2009.12.05 16:25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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