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선의 중공군 사격장 표적지처럼 쓰러져

 

 6·25전쟁에 참전한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뉴질랜드군은 비교적 소수의 스나이퍼를 전방 소총중대에 배속해 운용했다. 영연방 저격수들은 대부분 영국제 ‘리 엔필드’ 소총으로 무장했다. 캐나다군은 리 엔필드의 성능에 그다지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No 67 스코프를 장착한 ‘C모델’이나 ‘리 엔필드 No4’를 사용했다.

 미군은 ‘M1개런드’ 혹은 ‘스프링필드’ 외에 ‘윈체스터 M70’ 사격용 소총도 저격용으로 일부 투입했다. M70소총은 사거리가 길어 M2중기관총, 보이스 대전차총과 함께 38선 일대의 고착된 참호선에서 스나이퍼들에게 상당한 이점을 줬다. 미군 병기장교인 윌리엄 브로피 대위는 10배율 유너틀 스코프를 장착한 M70소총을 들고 자신이 직접 전선으로 나가 1000m가량 떨어진 중공군 병사를 명중해 그 성능을 확인했다.

 한국전에 투입된 오스트레일리아군은 공산군과 싸우는 전쟁에서 반드시 저격수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가졌다. 모든 보병중대에는 SMLE 리 엔필드 저격총과 저격수를 편성시켰다. 오스트레일리아 스나이퍼들은 태평양전쟁 중 보르네오와 뉴기니아 등의 격전지에서 싸웠는데 사거리가 불과 100m 이내로 짧은 정글전투와 비교하면 한국의 지형은 탁 트이고 저격술에 거의 완벽한 조건으로 보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대의 제3대대 스나이퍼인 이안 로버트슨 이병은 적 진지를 바라볼 수 있는 높은 감제고지에 저격진지를 잡았다. 사거리는 약 1000m가량, 바람이 심하게 불고 있었지만 그는 표적을 명중할 자신감이 있었다. 로버트슨은 가파른 능선을 쉴 새 없이 오가는 중공군을 향해 저격탄을 쏘기 시작했다. 명중! 명중! 그는 스코프를 바라보며 자신도 놀랐고 그 충격적인 상황을 이렇게 회상했다.

 “내가 총을 쏠 때마다 능선에서 떨어지거나 쓰러지는 적들은 빗맞는 경우라고 생각했습니다. 맞은 척해서 나를 속이려는 것이 아닐까? 총을 쏠 때마다 적은 사라졌습니다. 나는 연구 끝에 접근로의 어느 한 지점만 조준해 쏘면, 마치 사격장의 표적지 안으로 적이 스스로 들어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능선은 경사가 심하기 때문에 일정한 속도로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내리막길이든 오르막길이든 표적은 쉽게 명중됐습니다. 중공군들이 아군 쪽으로 박격포탄을 날릴 때 지휘하는 군관을 쏘자 순식간에 모두 도망쳐 버렸습니다. 일주일 후 아군이 적의 고지를 탈환하자 나는 표적지가 궁금해서 달려갔습니다. 마치 사격장의 훈련병처럼, 적의 참호선은 비좁고 그 앞은 가파른 낭떠러지였습니다. 바로 그 아래에 무려 30여 구의 시체가 쌓여 있었습니다.”

 영연방국 군대는 보이스 대전차총으로 저격전을 전개했는데, 종종 소총사거리 밖이라고 안심하던 공산군을 1000m 이상의 거리에서 명중하기도 했다. 보이스총은 양각대와 후미받침이 있으며 개머리판에는 작은 완충장치도 있으나 사격 시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과 소음 때문에 사수들이 피해를 입을 정도였다. 사격 시는 반드시 귀마개가 필요했고 한 명의 사수가 5발 이상을 발사하기가 어려웠다.

 유엔군의 적극적인 저격전으로 참호진지에서 중공군과 북한군들의 활동이 크게 위축됐다. 유엔군을 괴롭히던 그들의 저격탄도 급격하게 줄어들었기 때문에 아군 병사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진지를 활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방심은 금물, 미 제1해병사단 3대대장 역시 공산군 저격수의 공격으로 자칫 목숨을 잃을 뻔했다.

 그는 복수전을 위해 예하 각 중대에 6개의 2인조 저격팀을 만들어 훈련시켰다. 6·25전쟁 중 미군의 지원에 의존한 한국군은 귀중한 전투경험을 쌓았고 새로운 사격술의 세계를 터득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전투 중 채병덕 전 육군참모총장이 적의 조준사격에 의해 희생되는 피의 대가를 치르면서 북한군의 가공할 위협에 직면했다.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이 교착된 전선에서 저격술은 큰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휴전이 성립되자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처럼 저격술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었다. 미군 고위당국에서는 저격술이 전장에서 유효한 전술로 다시 인식했지만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환상만큼 크지는 못했다. 반면 6·25전쟁 후 북한군은 기존의 58식 소총과 68식 소총을 대신해 1963년 SKS 45총을 개발, 사수들에게 지급했다.

 이 총은 통상 63식 저격 보총으로 불려지면서 새로운 저격무기로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경험한 미군 병사들은 여전히 소총사격술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고 있고 일격필살의 저격전이 승패를 가름한다는 전장의 교훈을 믿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이 차후 다시 치르게 되는 새로운 전쟁에서 더욱 귀중한 교훈으로 나타났다.

 

국방일보(http://kookbang.dema.mil.kr/) 2008.08.19
<양대규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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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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