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량화 핵탄두 개발로 美에 실질적 압력 … ‘운명을 건 도박’ 가능성

 “흔히 이명박(MB) 대통령이 대북문제에서 강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절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장사꾼식 실용주의’가 북한을 보는 MB의 관점이다. 국제정치나 남북관계에 경험이 없다고들 해도, 비즈니스맨으로 살아오면서 흥정을 벌이고 담판을 짓는 협상의 기술은 체화돼 있다. 대북 접근법도 그런 관점에 바탕을 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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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부가 개성에서의 당국 간 2차 접촉을 추진하던 5월 중순,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가 전한 말이다. 이 무렵 청와대의 분위기는 이전과 사뭇 달랐다. 4월5일 장거리 로켓 발사 이전의 ‘단호한 대응’이라는 기조는 어느새 ‘유연한 대응’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었고, 이 과정에서 당초 외교통상부가 공언한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의 전면 참여에 관한 발표가 계속 미뤄진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의 실용주의적 성향 때문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오랜만에 ‘이벤트’를 맞이한 통일부에는 분주함과 흥분이 감돌았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당국 간 접촉을 고위급 회담으로 격상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외교부가 주축이 돼 강경한 태도를 이어오던 안보 라인의 헤게모니가 이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흔들리기 시작했고,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남북 간 대화를 열 수 있는 모멘텀이 준비되고 있다는 신호였다. ‘조선일보’가 ‘MB의 변화인가 변절인가’라는 칼럼을 통해 이러한 행보를 비판하고 나선 게 5월24일이다.

 

 상황은 미국 워싱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평양의 행보에 대해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를 이어오던 오바마 행정부의 초기 대북정책이 재검토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한 고위급 인사를 북한에 보내기 위한 조치가 북미 간 뉴욕 채널을 통해 궤도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사실상의 결정권을 가진 중량급 인사의 이름이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강성대국’ 향한 시간표

 분위기가 무르익던 5월25일 북한은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서울과 워싱턴에서 진행되던 반전의 움직임은 한순간에 중단됐다. 서울에서는 다시 ‘단호한 대응’이 키워드로 떠올랐고, 워싱턴에서는 ‘(북한 지도부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흘러나왔다. 청와대는 PSI 전면 참여를 발표했다. 워싱턴 고위급 특사의 방북계획은 백지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 평양 시민들이 5월26일 핵실험 성공을 경축하는 군중집회를 열고 있다.

 

 평양은 과연 5월 중순의 청와대와 백악관 분위기를 몰랐던 것일까. 일각에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 이후 북한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을 제기한다. 최근 서울과 워싱턴의 ‘온건’ 기류를 정확히 읽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핵실험을 강행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여기에는 최승철 전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의 처형설로 상징되는 대남라인의 몰락이 한몫했으리라는 견해도 뒤따른다. 남한이나 미국의 기류를 읽을 줄 아는 이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 배제되고, 지난 연말부터 이뤄진 인사결정으로 전권을 장악하게 된 군부의 강경노선에 힘이 실리는 것 같다는 해석이다.

 

 하지만 전직 정보당국의 고위 관계자들은 이 같은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사뭇 다른 결론을 내놓는다. 북한이 올해 들어 이어오고 있는 강경 조치들이 실은 일정 시간표에 따른 것 같다는 분석이다. 이는 북한이 ‘강성대국의 대문을 열어젖히는’ 해로 선포한 2012년을 목표 시점으로 잡고 역산해서 나온 결과물로 봐야 한다는 것.

 

 주지하다시피 2012년에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임을 결정지을 미국 대선이 예정돼 있다. 이해 여름부터 백악관이 대선 열기에 휩싸일 것을 감안한다면 평양과 워싱턴이 테이블에 마주앉아 실질적으로 밀고 당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당장부터 따져도 3년에 불과하다. 1998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클린턴 행정부와 1년 반, 2006년 1차 핵실험 이후 부시 행정부와 1년 반 동안 밀고 당기기를 벌였음에도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평양 처지에서는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안보당국의 한 전직 최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올해 들어 북한이 미사일과 핵을 동시에 언급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1998년과 2006년의 도박이 둘 중 하나에 관한 것이었다면, 최근 북한은 이 둘을 조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과시 중이다.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가능성 언급이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미사일과 핵 기술 보유를 보여줬다면 이제부터는 ‘핵을 장착한 ICBM’이라는 카드를 흔들어 미국에 실질적인 압력을 가하겠다는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다음 수순은 당연히 ICBM 발사다. 이에 더해 미사일에 장착 가능한 수준(중량 1t 안팎)으로 경량화한 핵탄두의 개발을 선언할 가능성도 있다. 다만 경량화한 핵탄두를 미사일에 실어 폭발실험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미국이나 유럽의 핵 과학자들을 초청해 핵탄두를 보여주는 방식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실제로 이전에도 평양은 미국 핵공학 전문가들을 영변 단지로 초청, 추출한 플루토늄 실물을 확인시켜주는 방식을 선택한 바 있다.

 

 

핵 장착한 ICBM 가능할까?

 물론 2009년의 북한이 ICBM 발사나 핵탄두 경량화를 완수할 만한 기술을 축적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4월 장거리 로켓 발사만 해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고, 핵탄두 경량화는 외부의 기술지원이 없으면 쉽게 달성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그러나 거꾸로 보면 최근 북한의 강경 행보는 ‘자신감’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정보당국의 한 전직 고위 관계자의 분석이다.

 

 “사실 2차 핵실험은 핵 능력의 향상을 의미할 뿐이다. 이것만으로는 상황이 근본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는 점을, 그 정도로는 백악관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란 같은 현안을 제쳐두고 한반도 문제에 매달릴 리 없다는 점을 평양도 잘 알 것이다. 그렇다면 기술적으로 ‘다음 단계’를 감행할 수 있는 자신감을 지니기 때문에 지금처럼 강공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가능하다. 미국이 ‘현존하고도 명백한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으로 인식할 만한 수준까지 밀어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동안의 대화노력 수포로

 2차 핵실험 직후 서울과 워싱턴의 분위기는 매우 강경하다. 그동안 물밑에서 논의되던 남북 간, 북미 간 대화 테이블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현재 상황은 북한이 ‘협상을 통한 해결’을 염두에 두고 벌인 도박이라면 분명 실패한 듯 보인다.

 

 한국만 해도, 핵실험 대응문제는 남북 간 협상을 담당하는 통일부나 6자회담을 담당하는 외교부가 아니라 국방부가 주도하고 있다. 2차 핵실험 이후 관련 브리핑이나 언론보도의 상당 부분이 국방부에서 나오고 있음이 이를 입증한다. 청와대가 현재 상황에 정치적 혹은 외교적 카드가 아닌, 군사적 대응방안으로 임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군사적 대치국면에 접어들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의 긴장 고조 등 위기 지수는 전례 없이 상승하고 있다. 내비친 선의(善意)를 배신당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대응법’이라 할 만하다.

 

 그러나 2차 핵실험이 다음 단계의 강경 조치까지 완결해 ‘더욱 큰 판의 도박’을 벌이기 위한 절차라면 아직 결론은 나오지 않은 셈이다. 물론 상황이 거기까지 이른다고 해서 오바마 행정부가 전임 행정부들의 전철을 밟아 북미 대화에 전면적으로 나설지는 불분명하지만, 그 경우에도 북한은 ‘ICBM 장착 핵보유국’이라는 엄청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또 하나의 전선(戰線)’을 설정하는 것이 불가능한 미국의 처지를 감안한다면 북한으로서는 분명 ‘운명을 걸어볼 도박’인 셈이고, BDA(방코델타아시아) 자금 동결 이후 북한을 제어할 지렛대를 확보하지 못한 한국과 미국, 국제사회로서는 답답함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암흑의 시간’이다. 위기의 순간, ‘장사꾼식 실용주의’는 과연 다른 답을 찾아낼 수 있을까.

 

핵실험 폭발력, 전문가들의 평가는? - ‘1차’보다 2~5배 강화된 폭발력

 미국 지질조사국이 분석한 5월25일 북한 핵실험의 지진파 패턴.  5월25일 핵실험 소식이 전해진 직후 그 폭발력에 대한 평가가 쏟아져 나왔다. 가장 먼저 소식을 전한 측은 러시아 언론들. 이들은 자국 국방부의 분석이라며 이번 핵실험의 폭발력이 최대 20kt(TNT 2만t 분량)에 달한다고 전했다. 같은 날 이상희 국방부 장관도 국회 국방위 답변에서 “최대 20kt까지 되는 실험일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번 실험에 사용된 폭탄이 히로시마급(15kt)으로 추정된다는 보도가 나온 배경이다.

 

▲ 미국 지질조사국이 분석한 5월25일 북한 핵실험의 지진파 패턴.

 

 이 같은 분석은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당시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 관측된 0.8kt의 폭발력을 보인 인공지진은 리히터 규모 3.6이었던 것에 비해, 기상청은 이번 인공지진이 리히터 규모 4.4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리히터 척도는 상용로그(log) 함수이므로 3.6과 4.4의 에너지 차이는 20배가량에 해당한다는 게 기상청의 분석 내용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이번 핵실험의 폭발력은 20kt에 육박하는 셈.

 

 문제는 데이터와 계산방식의 신뢰성이다. 러시아는 1차 핵실험 당시에도 초기 분석에서 5~15kt 위력의 폭발이라고 주장한 바 있어 한미 정보당국이 최종 확인한 0.8kt의 폭발력과는 차이가 컸다. 러시아와 북한이 인접해 정확도가 높으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진 계측의 정밀성은 지리적 접근성과는 관계가 없다. 오히려 세계 곳곳 관측소에서 확인된 지진파를 종합적으로 검토해 지질구조의 오차를 보정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기상청 분석의 경우, 그 한계는 더욱 명확해 보인다. 이는 1차 핵실험 때의 관측치를 적용해 간접적으로 추산한 것이지만, 미국과 구(舊)소련 등 핵보유국 연구진은 지하 핵실험의 지진 규모와 폭발력의 직접적인 상관관계를 규정하는 함수공식을 이미 만들어놓았다. 수십 차례 진행된 핵실험 데이터를 분석해 만들어진 이들 공식은 암반구조인지, 안정구조인지를 구분해서 적용할 정도로 정밀하다(예를 들어 암반구조 지하 핵실험의 경우, 리히터 지진 규모=4.262+0.973log 폭발력).

 이 공식을 이용해 미국 스탠퍼드대 강정민 객원연구원(핵공학 박사)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2차 핵실험의 폭발력은 1.2~2.8kt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지질조사국(USGS), 포괄적 핵실험금지 조약기구(CTBTO), 유엔 국제자료센터(IDC)에서 발표한 4.5~4.7의 지진 규모를 각각 암반구조와 안정구조로 나눠 적용한 결과물이다. 독일 함부르크대 카를 프리드리히 폰 바이츠체커 과학평화연구소(ZNF)의 마르틴 칼리노프스키 교수는 발표 자료를 통해 4kt 내외의 폭발력이라고 분석했다. 전미과학자협회의 한스 크리스텐슨 박사의 견해도 비슷하다.

 

 이렇듯 해외 전문가들은 대부분 이번 핵실험이 1차에 비해 2~5배 강화된 폭발력을 지닌다고 분석했다. 어느 경우든 히로시마급에 해당한다는 초기의 보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하지만 1차 핵실험보다 상당 부분 향상된 결과를 얻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어느 부분에 초점을 맞출지는 보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우습지만 데이터와 국제정치가 만날 때 종종 벌어지는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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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주간동아/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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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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