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방부는 주변국에 대한 군사원조용 전투기로서 적합한지 시험하기 위해  2대의 N-156F를 먼저 만들어 보고 각종 성능테스트를 진행해 보았다. 그러나 이 F-5A들은 가급적 훈련기인 T-38과 공통되는 부품을 많이 사용하도록 설계되다보니(이렇게 할 경우 노스롭은 두 기종의 단가를 낮출 수 있었다), 날개나 착륙장치의 강도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 그리고 분석 결과, 이 경전투기의 주 날개와 랜딩기어를 좀 더 튼튼하게 설계한다면 날개와 동체에 무장 및 연료탱크를 6천2백파운드(약 2.8톤) 정도까지 실을 수 있을 거란 예상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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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스롭은 이 결과에 맞춰 설계를 변경해서 세 번째 N-156F를 제작했다. 그리고 이 항공기부터, 저번 편에 설명했던 대로 F-5A (정확히는 시제기이므로 YF-5A)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그 외에 엔진도 앞서 생산된 N-156F에 붙었던 것보다 강력해진 J85-GE-13으로 바뀌었다. YF-5A는 1963년 6월 말에 처음으로 시험비행을 했다.

 

▲ F-5A 프리덤 파이터. 날개와 동체 밑, 그리고 주날개 끝에 달려 있는 것은 모두 연료탱크다. 즉 사진에서 보이는 기체는 비무장 상태다.

 

 미 국방부는 이미 한 해 전에 노스롭에 86대(F-5A 71대와 F-5B(F-5A의 2인승 버전 15대)를 만들 것을 주문했고, 다음해에는 그 수량을 좀 더 늘렸다. 각 전투기의 가격은 당시 돈으로 60만 달러였는데, 이것은 초음속 전투기 가격치고는 무척 싼 가격이었다. 미 정부가 이 전투기들의 제작비용을 노스롭에 지불했으나, 앞서 언급한바와 같이 이 전투기들은 미국이 쓰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나라에 원조해주기 위해 만든 것들이었다. 초기에 생산된 이 F-5들은 대략 1달에 12대 꼴로 생산되었다.

 

 이 F-5들이 미 공군에 전달된 것은 1964년도의 일이었다. 만약 이 전투기들을 해외에 원조해준다면, 그 원조 받은 나라의 조종사들과 정비사들을 훈련시킬 교관이 필요했기 때문에, 미 공군이 초기에 생산된 F-5A를 몇 대 받아서 일단 교관양성용으로 운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F-5A들은 전투비행대가 아닌 4441 전투 요원 훈련비행단(Combat Crew Training Squadron)에 배속되었으며, 이 후 이곳은 F-5를 새로 구매하는 나라의 조종사와 정비사들을 훈련시키는 훈련소 역할을 했다.

 

 한편 초기의 F-5A는 전투기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공대공 전투능력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물론 당시 기준으로 나름 뛰어난 기동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중의 적을 포착하기 위한 레이더는 물론 적기를 공격하기 위한 기관포조차 탑재되지 않았다. 이는 워낙에 값싸게 만들려고 비싼 장비는 최대한 줄이려다 보니 생긴 결과였다.

 

▲ 초창기 F-5A의 사진. 기수 부분에 기관포가 없다. 대신 지상공격 능력을 자랑하듯, 폭탄을 무려 18발이나 탑재하고 있다. 다만 이 폭탄들은 가벼운 축에 드는 250파운드(113kg)급 폭탄인 Mk.81로, 위력이 약해서 현재는 거의 쓰이고 있지 않다. 사실 이 가벼운 폭탄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 수량이면 F-5A가 정상적으로 작전하긴 어려운 정도의 무게이며 공기저항도 매우 크다. 즉 위 사진은 홍보를 위한 연출이며 실전적인 상황은 아니다.

 

 결국 재검토 끝에 1964년 중반, 기관포만은 탑재하기로 결론을 내렸으며 기수에 정찰용 카메라나 추가연료탱크를 탑재하는 방안도 검토하기로 했다. 이 검토결과에 따라 F-5의 기수에는 콜트-브라우닝에서 만든 2자루의 M39 20mm 기관포가 장착되었으며(각 기관포마다 285발의 탄약 탑재), 이와 함께 눈앞에 있는 목표물과의 거리만은 잴 수 있도록 에머슨사의 거리측정용 소형 레이더가 탑재되었다.

 

▲ 그리스 공군의 F-5A. 기수 부분에 난 두 개의 작은 구멍이 바로 M39 20mm 기관포자리다. 이처럼 실제로 양산된 F-5A들은 기수에 기관포를 탑재했다. 사진의 기체는 엔진이 빠져있는 것으로 보아(공기흡입구 너머로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미 퇴역한 뒤 야외전시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인승 버전인 F-5B에는 이 기관포가 끝내 탑재되지 않았다. 당시 관계자들은, F-5B는 일선에서 적과 싸우는 전투기라기보다는 새로운 전투조종사의 무장 훈련용 훈련기내지 F-5A 조종사의 훈련용 항공기로 쓰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F-5B는 F-5A와 마찬가지로 각종 무장을 탑재할 수는 있으나, 기관포만은 탑재되지 않았다.

 

▲ 초창기의 F-5B. 좌석이 두 개라는 점에서 T-38과 흡사하지만 무장탑재 능력 등은 F-5A에 가깝다. 사진속의 기체는 날개 밑에 M117 750파운드 폭탄을 4발 탑재하고, 날개 끝과 동체 아래에는 보조연료탱크를 탑재하고 있다. 참고로 M117 폭탄은 베트남전 이후 폭약량은 적지만 대신 더 공기저항을 적게 만드는 Mk.82(500파운드)에게 주력 폭탄 자리를 내주었다.

 

 하여간에 이 값싸고 단순한 전투기인 F-5A/B가 탑재할 수 있던 유일한 유도무기는 날개 끝에 장착할 수 있는 AIM-9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열추적 미사일 2발 정도였다. 이 외에 F-5A/B는 날개와 동체 밑에 지상공격을 위한 비유도 로켓이나 폭탄류, 혹은 외부 연료탱크를 탑재할 수 있었다.

 

▲ 좌우 날개 끝에 AIM-9 사이드와인더 미사일을 단 F-5A. F-5A가 탑재할 수 있는 유일한 공대공 미사일이다. 하지만 초창기의 모습이라 정작 기수에 기관포는 없다.

 

 정부가 초기에 돈을 대주지 않은 채로, 자신들의 돈으로만 새로운 전투기를 개발하는 것은 노스롭으로서는 큰 모험이었다(보통은 정부에서 전투기의 개발비를 주고, 그 돈을 가지고 전투기 개발사가 설계를 진행한다). 하지만 노스롭은 자신들의 돈과 설비를 투자해서 N-156을 개발했고, 그 결과 T-38이라는 훈련기와 함께 F-5A/B라는 베스트셀러 전투기를 만들게 되었다. 특히 이 F-5A/B는, 처음에는 군사원조용으로 99대 정도가 만들어졌을 뿐이었으나 1972년 생산라인이 문을 닫을 때는, 이미 636대를 생산한 뒤였다. 아무리 값싼 전투기라고는 해도 이정도 수량은 상당한 양이었으며, 노스롭은 N-156에 대한 투자는 성공적이었던 셈이다.

 

 F-5A/B는 남베트남, 이란, 그리스, 플리핀, 태국, 터키, 모로코, 노르웨이, 파키스탄, 에티오피아, 태국, 리비아, 요르단, 예멘, 베네수엘라, 캐나다 및 우리나라 등,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 터키 소속의 F-5A 전투기 2대가 곡예비행을 펼치고 있다. F-5 및 T-38은 값이 싸고 유지비가 적게 들면서도 비교적 기동성이 좋다 보니 여러 나라에서 종종 곡예비행용으로 쓰기도 했다(우리 공군도 한 때 F-5계열 기종을 곡예비행용으로 사용했다).

 

▲ 이란 소속의 F-5B. 현재는 미국과 이란이 외교적으로 매우 사이가 안좋지만, 팔레비 왕조 시절에만 해도 이란은 미국 군수업체의 주요 고객이었다.

 

▲ 노르웨이 소속의 F-5B. 이 기체는 노르웨이의 신형 공대함 미사일을 연구하기 위해 일부분이 개조되었다. 날개 끝에 매달린 빨간색으로 칠해진 장비도 아마 미사일 발사 시험을 위해 임시로 만든 장비인 듯하다.

 

꼬마 호랑이 : F-5C

 F-5에 별로 흥미가 없던 미 공군이었으나, 막상 베트남전이 터지자 한 대의 전투기도 아쉬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미 공군은 정부에 베트남전에 쓸 F-5 200대를 요청했다. 이것들은 F-5A/B와 비교해 몇 가지 사양이 개량된 버전으로, 1인승은 F-5C, 2인승은 F-5D라고 명명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미 공군의 요청은 미 국방부에 의해 기각되었다. 그래도 미 공군은 하다못해 경전투기의 가능성만이라도 실전에서 시험해보겠다고 요청했고, 결국 미 국방부는 이 요청을 받아 들여 소수의 F-5를 미 공군에 주기로 했다.

 

 이 F-5들이 F-5C였는데, 이것들은 미 공군을 위해 새로 생산된 것은 아니며, 원래는 원조용으로 생산된 F-5A 12대를 미 공군이 빌려온 것이다(나중에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6대를 더 빌려왔다). 이 전투기들은 기본적으로는 F-5A와 거의 같았으나 미 공군의 요청에 따라 몇 군데 개조되었다.

 

 먼저 외관상 큰 변화는 공중급유를 위한 프로브가 붙은 점이었다. 이 공중급유용 프로브 덕에 F-5C는 더 먼 거리의 목표물까지 비행하거나, 혹은 더 오랜 시간 공중에서 대기하며 아군 측의 지상군에 대한 공중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되었다. 더불어 F-5C는 주로 지상공격임무를 맡게 될 예정이었으므로, 대공포 등에 맞아도 어느 정도 버틸 수 있도록 동체 하부에 약 40kg 정도의 장갑판이 추가되었으며, 유사시 기체 무게를 줄일 수 있도록 무장을 탑재하는 파일런도 비상 투하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원래 F-5A/B는 무게를 줄이기 위해 무장들을 비상 투하하면, 폭탄 같은 것만 떨어져 나가고 파일런은 그대로 기체에 남았다). 이 외에 조준기도 적의 비행경로 등에 따라 어느 지점을 조준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리드(Lead) 계산 조준기로 바뀌었다.

 

▲ 미 공군의 F-5C. 공중급유를 받으며 비행하고 있다.

 

 초기에 미 공군이 얻은 F-5C 12대는 공중급유를 받아가며 태평양을 넘어 미국에서 하와이까지 날아갔다. 그리고 여기서 휴식을 취한 뒤 다시 태평양을 가로질러 베트남으로 향했으며, 도착한지 5시간 만에 첫 실전 임무에 참가했다.

 

 미군은 F-5C의 실전 테스트 임무에 스코시 타이거(스코시는 꼬마라는 의미이다. 이에 대해선 아래쪽에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놓았다) 작전((Operation Skoshi Tiger)이란 이름을 붙였다. 스코시 타이거는 간혹 F-5C 자체를 부르는 이름으로도 쓰인다.

 

 단어 선택이야 어찌되었던 간에, 이 F-5C의 실전테스트 임무는 꽤나 성공적이었다. F-5C는 지상근접지원, 후방차단, 무장정찰, 전자정보수집기 호위 등 다양한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심지어 본격적인 공중전 임무인 MIG CAP (미그기에 대한 경계임무)을 맡고 북베트남 상공을 비행하기도 했다. 다만 F-5C에게 덤벼드는 미그기가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공중전을 경험하진 못했다.

 

▲ 베트남에 전개한 F-5C. 맞은 편에 보이는 전투기들은 F-100 수퍼세이버다.

 

 F-5C는 베트남에서 보통 500파운드(약 226kg), 혹은 750파운드(약 340kg) 폭탄과 연료탱크 등을 약 2300파운드(약 1톤)에서 3000파운드(약 1.4톤) 가량 탑재하고 기지에서 이륙하여 180해리(NM)(약 330kmk) 밖의 목표물을 공격하고 돌아오곤 했다. 물론 F-5C가 베트남에 투입된 이유는 어디까지나 실전 테스트였으므로 이런 일반 폭탄 이외에도 다른 종류의 폭탄이나 지상공격용 로켓을 탑재하고 임무를 수행하곤 했다.

 

 F-5C는 베트남에서 약 4개월간 머무는 동안 높은 작전 준비상태를 보여줬다. F-5C는 비교적 구조가 단순한 경전투기이다 보니 고장이 날 요소가 적었으며 설사 고장이 나도 수리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거친 야전환경에서 F-5C의 엔진 1개를 교체한 뒤, 비행시험을 수행하는데 까지 1시간 55분밖에 걸리지 않은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F-5C의 조종사들도 자신들의 전투기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 전투기는 물론 F-105나 F-4 같은 대형 전투기에 비하면 무장탑재량이 훨씬 적었지만, 상대적으로 조종하기 쉬웠고 조종사가 원하는 대로 잘 움직이다보니 목표물을 더 정확히 조준하기 좋았다. 또한 경쾌한 기동성덕에 대형 전투기들에 비해 적의 대공포가 발견되면 즉각 회피하기가 더 쉬웠으며, 기체자체가 작다 보니 맞을 확률자체도 줄었다.

 

 물론 실전을 통해 F-5의 결점도 드러났다. F-5는 대체로 이륙거리가 짧았으나, 만약 무장을 잔뜩 탑재하려면 상당히 긴 활주로가 필요했다. 무장을 많이 탑재하게 되면 항공기 무게에 비해 엔진 힘이 달려서 이륙에 필요한 속도까지 가속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 또 기수 윗부분에 장착된 기관포를 발사할 경우, 그 연기가 전방유리창을 덮어 그을음을 남기는 바람에 조종사의 시야가 가려지기도 했으며, 특히 전방유리창이 젖어 있는 비오는 날이면 이 현상이 심했다.

 

 드물게는 기관포 발사시 생긴 뜨거운 연기가 엔진으로 빨려들어가 엔진이 망가지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F-5C가 750파운드급 네이팜탄을 투하하면, 제대로 분리되지 않고 공중에서 다시 튀어올라 날개 밑 부분을 치고 지나가는 현상도 발견되었다. 이런 실전을 통해 발견된 각종 문제점들은 미 공군의 정비사들과 노스롭의 협조하에 하나씩 해결되어 나갔다.

 

 F-5C는 베트남에서 약 3500회 비행했으며 총 비행시간은 4000시간이 넘었다. 이 작전기간 동안 2대의 F-5C가 대공포에 의해 격추당했으나 전체적인 성능 및 작전능력은 미 공군의 기대 이상이었고, 이는 F-5의 새로운 성능 개량형, 즉 F-5E/F를 개발하는 계기가 되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1 : 스코시

 스코시가 일본어로 영어의 Little에 해당한다는 정도만 알 뿐, 필자는 일어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이와 관련하여 주변에서 자문을 구하였다. 스코시(Skoshi)는 일본어의 ‘스코시(小し)’에서 온 말로, 일본어의 영어식 표기로 하자면 Sukoshi가 더 정확하다. 뭐 발음이야 크게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문제는 스코시라는 단어를 타이거 앞에 붙이는 것 역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 스코시라는 단어는 ‘작은’이라기 보단 ‘조금’이란 뜻에 가깝다. 즉 우리말로 ‘작은 호랑이’라고는 해도 ‘조금 호랑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일어에서 스코시는 ‘조금’에 해당하는 부사로, ‘작은’이라는 뜻을 나타낸다면 치이사이(小さい)라는 형용사를 쓰는게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왜 미군은 문법을 틀려가며 그것도 남의 나라 말인 스코시란 단어를 쓴 것일까?

 

 이는 스코시라는 말이 미군 내에서 작다, 꼬맹이라는 뜻의 속어로 쓰이기 때문이다. 즉 이 친구들이 일부러 일어사전을 찾아가며 굳이 잘못된 단어인 스코시란 단어를 붙인 것이 아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스코시란 단어가 미군 내에서 속어로(그것도 의미가 잘못된 채로) 쓰이게 된 계기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다. 하여간에 스코시 타이거란, 미군 입장에서는 ‘꼬마 호랑이’ 정도의 의미가 된다. 일본인들 입장에선 ‘조금 호랑이’ 라는 이상한 말이 되지만...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2 : M39 20mm 기관포

 2차대전 말엽, 독일의 총기 제작회사 마우저는 MG213이란 기관포를 개발했으나, 너무 늦게 개발한 나머지 이 기관포를 실험만 해보고 생산까진 하지 못했다. 2차 대전 당시에는 이미 다양한 20mm 기관포가 있었으나, MG213의 구조는 독특했다. 이 기관포는 마치 리볼버 권총처럼 약실이 여러 개 있었으며, 이것은 돌아가면서 탄이 장전되고, 탄을 격발시키며, 탄이 빠져나간 탄피를 빼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이를 리볼버식 기관포라고 하는데, 이는 총에서 화약이 터질 때 상당히 많은 힘이 가해지는 약실을 여러 개로 나눠서 연사를 하는 동안 이 부분이 연속적으로 받는 힘을 줄이려고 하는 것이다.

 

▲ 사진과 같은 리볼버 권총들은 보통 5~7개 정도의 약실에 미리 총알을 꽂아 넣은 다음, 방아쇠를 당기면 총알이 격발되는 것과 동시에 다음 총알이 위로 올라와 준비상태가 된다. 탄창을 사용하는 권총에 비해 장전할 수 있는 총알 수량은 적지만 고장날 확률이 적어서 현재도 경찰이나 조종사 호신용 권총 등으로 많이 쓰이다. 참고로 사진속의 리볼버 권총은 웨블리 Mk.IV로,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서 박창이(이병헌)가 들고 다니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이런 개념만 놓고 보자면 개틀링 기관포와 비슷하지만, 개틀링과 달리 이 리볼버식 기관포는 총알이 지나가는 길, 즉 총열 자체는 하나이고 약실만 여러 개다. 이때문에 개틀링 방식의 기관포 보다는 연사속도가 떨어지지만, 대신 훨씬 부피가 작고 가벼우면서도 최소한 종전의 기관포 보다는 빠르고 안정적으로 포탄을 쏠 수 있었다.

 

 ▲ 리볼버식 기관포를 설명한 그림. 먼저 탄약이 약실로 향한다. 그리고 탄약이 반 정도 약실로 들어가고, 약실이 돌아가면서 탄약은 완전히 장전된다. 그리고 약실이 총열과 일치되면 탄약이 격발된다. 그리고 격발되고 나서 빈 탄피는 약실이 돌면서 빠진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러한 리볼버 방식 기관포 작동 방식을 받아들여서 각각 새로운 기관포인 아덴(ADEN)과 DEFA를 개발했다(단 두 기관포 모두 구경은 더 큰 30mm급이다). 미군 역시 T-160이란 이름으로 스프링필드 조병창에서 리볼버식 20mm 기관포를 개발했다. 그리고 이 기관포를 당시 화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던 F-86에 시험적으로 달아서 6.25가 진행중이던 1953년 말엽에 실전에 사용해 보았다(F-86은 원래 12.7mm 기관총(즉 MG50이나 M-2 중기관총이라 부르는 기관총) 6정을 사용했다).

 

 이후 이 기관포는 정식으로 군에 채용되면서 M39란 이름이 붙었으며, F-86H 전폭기, F-100 수퍼세이버, F-101 요격기 및 F-5 전투기에 장착되었다. 그리고 더 뒤로 가면 이전에 설명한 바와 같이 개틀링 방식인 M61 발칸 기관포가 미군 전투기의 표준 무장으로 자리잡게 된다.

 

▲ 박물관에 전시된 M39 20mm 기관포.

 

▲ 리볼버 구조가 확대된 사진. 약실 자체는 리볼버 권총의 그것과 꽤나 비슷해 보인다.

 

 한편 영국과 프랑스는 여전히 ADEN 및 DEFA 기관포를 고집하는데, 대체로 유럽 쪽은 연사속도는 개틀링보다 느리지만 탄 한 발 한 발의 위력이 더 강한 30mm 기관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러시아 역시 주력 전투기인 SU-27과 MIG-29에 Ghs-30-1 30mm 기관포를 탑재했는데, 이 기관포는 리볼버 방식도 아니고 더 전통적인 가스작동 방식이다(즉 일반적인 기관총과 유사하다). 러시아는 굳이 기관포의 연사속도를 높일 필요가 없으므로, 기관포에 있어서 리볼버 방식마저도 너무 무겁고 거추장스럽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자유의 투사’ F-5 전투기 개발, 사진으로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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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주간 공군웹진 공감 / 필자 이승진

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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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말 자세히 잘 나와있군요. 흥미진진해요~

    2009.06.16 22: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