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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5.31 [저격수의세계 - 28] 6·25전쟁과 저격전

북한군 공세 거세지자 미군 등 저격팀 급조

 

 6·25전쟁은 북한군의 기습남침에 맞서 최초로 유엔군이 참전한 전쟁이었다. 전투를 치르면서 유엔군 병사들은 북한군과 중공군에 맞서 치열한 총격전을 전개했다. 험준한 산악지형 때문에 중장비가 무력해지고 대신 사람과 사람의 전투 즉, 소총병의 사격전이 주류를 이뤘다.


 초기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세가 거세지자 미군과 영국군 등 유엔군들은 우선 부대의 특등사수들을 모아 저격팀을 급조했다. 반복되는 고지 쟁탈전에서는 장거리사격이 보다 중요했다. 미 해병대 스나이퍼들은 기존의 스프링필드나 M1 개런드 저격총 외에 사거리를 연장시키기 위해 대구경의 0.50인치 중기관총을 사용했다.


 0.50인치 M2 중기관총(MG50)은 대공·지상 공격용으로 자동사격과 단발사격이 가능했고, 위력적인 탄환이 1200~20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목표물을 제압할 수 있었다. 특히 기관총을 개량해 만든 저격용 M2, 빅 휘프티스(Big Fifties) 소총은 과거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미군이 일부 사용했다.


 미군 콘웨이(F. Conway) 중령은 시험사격 시 1400m 이상 장거리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고, 텍사스의 포트 블리스(Fort Bliss)에서는 무려 2800m의 거리에서도 표적을 명중시켰다고 증언했다. M2 저격총이 비록 크기와 무거운 중량 때문에 문제가 있었지만 한국전에서는 큰 관심이 쏟아졌다.


 미군 저격수들은 산악지대를 넘어 끝없이 밀려오는 중공군 공세에 대해 다량의 저격탄을 퍼부었고 장거리에서는 0.50인치 빅 휘프티스로 대응했다. 특히, M2 저격탄은 탄자를 분리하고 탄피에 화약을 가득 채운 특수탄으로 단발 파괴력을 증가시켜 북한군의 중장비를 파괴하기도 했다.


 유엔군이 사용한 영국제 구경 0.55인치 보이스(Boys) 대전차 총은 북한군 탱크 철갑을 뚫기에 파괴력이 다소 미흡했다. 그러나 보이스를 미군의 0.50구경 M2 소총으로 개량해 망원조준경을 장착한 결과 1000m 이상의 거리에서도 정확한 사격이 가능했다.


 한편 미 해병대는 장진호 전투의 실패 이후 전세를 가다듬고 반격을 준비했다. 제1해병사단장이 어느 날 쌍안경으로 전선을 관찰하고 있을 때 적탄이 그의 쌍안경을 명중시켰다. 충격적이고 자존심 상하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해병대는 본격적인 저격전을 모색하게 됐다.


 1951년 말 무렵, 미 해병대가 교착된 전선에 투입됐을 때 저격팀의 기본단위는 감적수-저격수 2인조로 저격용 소총과 7x50 쌍안경을 갖췄고 4명의 소총수가 엄호를 맡았다. 해병대의 전사기록에는 한국전쟁의 효과적인 스나이퍼 운용과 저격 기술을 상세히 밝혔다.


 “저격은 통상 관측이 용이한 아침시간이 가장 효과적이었다. 아침 햇살이 적을 눈부시게 하고 저격수가 그림자로 가려지기 때문이다. 특히 안개를 이용해 사격을 하면, 안개가 적의 관측을 방해할 뿐만 아니라 적이 보호막처럼 느끼기 때문에 표적을 노출시킨다. 스나이퍼들은 때때로 1000m 거리에서 표적을 쐈지만 600m가 가장 적절한 사거리였다.”


 전투 간 저격팀과 엄호조는 구간 전진을 하면서 정찰활동을 동시에 수행했다. 엄호조는 유선 통신망으로 중대본부에 정찰 내용을 보고했다. 야전 전화기는 심지어 적 지역 1000m의 거리에 투입된 저격수에게도 연결돼 적의 집단표적이나 목표물을 보고하게 했다. 전선에서 북한군과 중공군 저격수들도 만만치 않았다.


 소련제 모신나강 저격총으로 무장한 그들은 장거리 사격으로 고지의 참호를 명중시키거나 미군 헬리콥터를 공격했다. 오스트레일리아 부대는 공산군이 장악한 614고지로부터 날아오는 총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보이지 않는 곳, 적어도 550m 떨어진 곳에서 누가 쏘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소련군 스나이퍼가 적 진영에 있다는 풍문이 떠돌았다.


 사실 소련군이 북한군의 군사고문으로 참전한 사실이 있기 때문에 아주 뜬금없는 풍문은 아니었다. 게다가 유엔군이 노획한 적 장비는 대부분이 소련제였고 그중에는 PU스코프가 달린 모신나강 저격총이 발견되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의 전후 자료에는 당시 소련군보다 북한군 저격수 차상률의 업적을 크게 선전하며 그가 120여 명을 쐈다고 했다.


 이 무렵 중공군 측에서도 저격수들이 위협적으로 총격을 가해 왔다. 그들 중 일부는 전문적인 사수들로 대부분 스코프가 장착된 총보다는 보통 가늠자로 장거리 조준사격을 했다. 특히, 중공군의 짱 타오팡이란 저격수가 바로 614고지에서 활약한 장본인이며 선전자료에는 그가 32일 동안 유엔군 214명을 사살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 진위를 떠나 적어도 저격수의 위협이 전장에서 얼마나 심각했는가를 나타내 주는 것이다.


 

국방일보(http://kookbang.dema.mil.kr/) 2008.08.12
<양대규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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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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