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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3.12 [저격수의세계 - 8] 보어전쟁의 사례
보어군의 ‘정밀사격’에 영국군 큰 피해

 

 보어 전쟁은 1899년부터 1901년 사이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식민지 전쟁이다. 이 전쟁은 기본적으로 마우저 소총으로 무장한 남아프리카의 네덜란드 이주민인 보어군과 엔필드 소총으로 무장한 영국군 간의 싸움이었다.

 이 전쟁을 치르면서 양측의 군대는 주로 소총과 기관총 사격으로 전투를 전개했다. 양측 병사들의 소총은 대체로 그 설계와 성능 면에서 비슷했지만 전술적 운용면에서 뛰어난 보어군이 전장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영국군은 강력한 25명 분대가 가장 작은 전술 단위였고, 상급 부대의 사격 명령에 의해서만 일제히 사격을 실시했다. 반면에 아프리카 사냥꾼들인 보어군은 개별적으로 사격을 했고 모두가 훌륭한 저격수로서 자신의 상당한 기술을 발휘할 수 있었다. 보어군 게릴라 지휘관인 리츠(D. Reitz)는 그의 병사들이 1200m 이상의 장거리에서도 영국군 주력 부대와 훌륭하게 교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군의 전술은 무모하리만큼 공격적이며 부대가 쉽게 노출됐다. 이에 비해 보어군은 지형의 방어적 특성을 이용해 잘 은폐된 위치에서 싸우며 정확한 소총사격을 가했다. 따라서 영국군들은 보어인들에게 거의 피해를 입히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엄청난 인명손실을 입었다.

 스피온 콥 고지 전투에서 포위된 영국군들은 머리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보어군 저격수들의 사격을 받고 큰 피해를 당했다. 진지에 몸을 숨긴 채 신출귀몰하게 움직이는 그림자 같은 저격수들, 그들은 모두 노련한 싸움꾼들이며 순간적으로 노출되는 적의 팔다리를 명중할 만큼 보어군의 저격 솜씨는 영국군들이 과거 어느 전쟁에서도 겪어보지 못했던 놀라운 기술이었다.

 스피온 콥 정상의 분지는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많은 시체가 쌓였다. 이러한 전투는 영국인들의 자존심을 크게 손상하는 사건이었다. 보어군의 우수한 장거리 사격 실력을 보고 영국의 사격 전문가들은 남아프리카로 원정을 떠나는 신병부대들에게 중요한 경고를 했다.

 “장교와 하얀 돌에 주의하라!” 화려한 제복을 입은 영국군 장교는 쉽게 눈에 띌 수 있는 표적이고, 하얗거나 색깔이 연한 아프리카 돌은 보어 저격병들에게 좋은 사거리 표지가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든 상황이 보어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었는데, 때때로 영국군과 식민지군이 보어군의 허를 찌르기도 했다.

 마페킹(Mafeking)의 포위 전투 때 영국군은 보어군에게 포위돼 계속 위협적인 사격을 받아 피해가 속출했는데, 주변에 있는 높은 수목 때문에 보어군의 사격 위치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키기 위해, 영국군 로데시안 연대와 남아프리카 보안대 중에서 가장 사격을 잘하는 저격수들이 보복전을 시도하기도 했다.

 한 영국 저격수는 밤중에 잠복호를 파서 숨은 다음날 저녁까지 끈질기게 기다렸다. 해가 지자 조심스럽게 나온 저격수는 박명을 이용해 목표물을 향해 치명적인 사격을 가했다. 보어군들은 눈부신 석양빛 때문에 그 사격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찾지 못하고 허둥대며 수십 명이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부분적인 성공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국군의 사격 수준이 보어군에 비해 초라하다는 것은 확실했다. 전장의 곳곳에서는 보어인들의 날카로운 저격술이 끈질기게 영국군들을 괴롭혔다. 영국군은 최초 1만 명을 투입했으나 2년 후에는 30만 명이라는 대군을 투입하지 않으면 안 됐다. 결국 영국은 보어군을 제압하기 위해 대규모 증원군을 파견함으로써 대영제국의 체면을 유지하게 된 것이다.

 이 전쟁을 통해 보어군 저격수들의 소총 다루는 솜씨는 영국 병사들에게 저격술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는 좋은 본보기가 됐다. 보어전쟁 이후 1900년대는 화력이 증가하면서 전술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됐고 군대가 한 곳에 집결해 전투할 필요가 없어졌다.

 목표물은 점점 작아져 조준이 힘들어졌고, 특히 화려한 색깔의 군대 유니폼이 카키색이나 짙은 회색, 황녹색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저격은 더욱 어렵게 됐다. 따라서 소총의 정확성이 크게 높아진 만큼 고난도의 사격술도 필요하게 됐다. 영국군은 이러한 뼈아픈 교훈을 거울삼아, 10여 년 후 1914년 세계대전에 참전할 즈음에는 우수한 소총 사격술을 보유하게 됐다

 

국방일보(http://kookbang.dema.mil.kr/) 2008.03.18

<양대규 전사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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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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