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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각 국의 팬텀기 모습, 자세히 살펴보기

 C-130 수송기 ‘훈련비행’ 자세히 살펴보기

 한국형 ‘대레이더 공격기’ 발전과정 알아보기

 기관포 없던 팬텀, 그 결과 사진으로 알아보기

 ‘F-4 팬텀이 탄생하기까지’ 발전과정 사진으로 보기

 끝없는 ‘개량’ 통해 명품으로 완성, F-4 팬텀

 ‘명품’ F-4 팬텀의 독특한 날개구조, 그 이유는?

 

팬텀의 마스코트, 스푸크
 MCAIR라는 항공업체서 일하던 웡(Anthony Wong)은 항공기의 구조물 도해도나 매뉴얼의 삽화같이 항공기와 관련된 그림을 주로 그리는 기술자료 전문 일러스트레이터였다. 그는 1962년 어느날, 팬텀을 의인화한 캐릭터 하나를 그렸다.  
  

▲ 팬텀을 의인화한 캐릭터, ‘스푸크‘ 
  

 이 캐릭터는 팬텀(유령)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얼굴은 큰 고깔모자의 그림자에 가려진 채 눈만 번뜩이며, 당당한 자세로 버티고 서 있었다. 몸에는 팬텀의 정식 명칭이 팬텀2라는 것을 의미하는 로마숫자 II가 그려져 있었다. 웡이 그린 팬텀 캐릭터는 곧 미 해군과 미 공군 조종사들 사이에 퍼졌고, 조종사들은 자신들의 어깨에 마스코트처럼 이 캐릭터의 그림을 붙이고 다녔다. 이 마스코트의 이름이 바로 스푸크(Spook : 팬텀과 마찬가지로 유령이라는 뜻)다.

 

▲ 스푸크는 우리나라의 팬텀 중 F-4D의 수직꼬리날개에도 그려져 있다. (사진제공 : 이골님 (http://blog.naver.com/toysher))
 

▲ 저녁하늘을 배경으로 비행중인 F-4E 팬텀. 기수와 동체 부근에 연한 녹색빛으로 빛나는 띠 모양의 불빛은 편대등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상쪽에서는 볼 수 없고 또 불빛이 그리 밝지 않아서 전투 중 켜도 적에게는 보이지 않으며, 가까이 나는 편대원 끼리만 볼 수 있다. 그래서 야간비행시에는 이 불빛으로 편대원끼리 서로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새롭게 태어난 B, F-4N

 1972년부터 1974년 사이, 미 해군은 자신들의 F-4B를 업그레이드했다. F-4B는 이 시점에서 이미 생산된 지 10년이 지났으므로 구조물들에 어느 정도 피로가 쌓여 있었던데다가 대부분 베트남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수명이 더 빨리 줄어들었다. 이는 평상시와 달리 전시에는 같은 기간 동안에도 더 자주 출격을 하는데다가 더 급격한 공중기동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F-4B는 새로운 업그레이드를 받으면서 내부의 구조물 상당수를 새 부품으로 교체했다. 
  

▲ 전시중인 F-4N. 공기흡입구 바로 뒤쪽, 동체 위쪽에 길게 튀어나온 부분이 바로 전파방해장치용 안테나다. 
 
 또 업그레이드 된 F-4B는 적의 레이더 전파를 교란하는 장비를 외부에 따로 달지 않고 기체 내부에 통합했으며, 이를 위해 안테나가 기체 여기저기에 덧붙었다. 그리고 F-4J에도 탑재되었던 VTAS와 SEAM이 업그레이드된 F-4B에 추가되었으며, 이 외에도 몇 가지 전자장비들이 업그레이드되었다. 더불어 전자장비의 추가 및 업그레이드 상황에 따라 기존 전력으로는 공급이 부족하게 되면서, 충분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발전기도 원래 있던 것보다 좀 더 용량이 큰 30KW급으로 바뀌었다. 다만 레이더나 적외선 탐지장치는 원래 F-4B가 쓰던 것을 그대로 사용했다.

 

 업그레이드 된 F-4B는 엔진 역시 F-4B의 것인 J79-GE-8을 그대로 썼고, 단지 매연을 줄이는 장비가 추가됐다. 기술자들은 원래의 F-4B의 날개의 앞전플랩 중 날개 안쪽에 있는 것은 쓸모가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업그레이드 된 F-4B에는 이것의 작동 장치가 빠진 채 고정되었다(날개 바깥쪽의 앞전 플랩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 업그레이드 된 F-4B의 수평꼬리날개는 F-4J나 F-4E에 썼던 것처럼 앞전에 틈이 있는 모델로 바뀌었다. 이렇게 업그레이드가 된 F-4B는 총 228대였으며, 이들은 F-4N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미 해군의 마지막 팬텀, F-4S
 1970년대 중반, 미 해군은 신형 전투기인 F-14와 F/A-18을 완전히 배치하기 전까지 전투기 전력을 유지하기 위해 F-4J 팬텀을 업그레이드해서 쓰기로 했다. 약 300대의 F-4J가 업그레이드 작업을 받았는데, 이들은 F-4S로 이름이 바뀌었다. 주로 바뀐 것은 오랜 시간 사용하면서(특히 실전에 참가해서 평소보다 더 혹독한 환경에 놓였던) 노후된 기체의 구조물이나 부품 등이었는데, 이것을 새것으로 교체해서 팬텀의 수명을 늘렸다.

 

▲ F-4S 팬텀. 미군은 베트남전이 끝나고 얼마안가 전투기에 있던 각양각색의 마크들을 대부분 적의 눈에 잘 안띄는 회색계열로 바꿔버렸다. 사진의 F-4S도 이탓에 베트남전에 참전하던 시절의 팬텀에 비하면 훨씬 밋밋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미 공군의 마지막 팬텀, 야생 족제비 F-4G

지난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미국에서 생산된 최후의 팬텀은 F-4E였다. 그러나 이것이 미 공군이 썼던 마지막 팬텀 모델은 아니다.  
 

▲ F-4G 와일드위즐. AIM-45 슈라이크 대레이더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다.
 

 미 공군은 베트남전을 겪으면서 처음으로 지대공 미사일의 위력을 실감했다. 물론 이 때 미 공군이 겪은 SA-2는 당시만 해도 명중률이 그렇게 높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이 날아오는 것을 피할 때 더 기체를 가볍게 해서 조금이라도 기동성을 높이려고 폭탄을 버려서 폭격 임무를 포기하거나, 혹은 SA-2를 피해 낮은 고도로 도망치다가 대공포 같은 것에 격추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급한 대로 F-100이나 F-105 전투기를 개조, 이런 지대공 미사일을 유도하는 레이더 기지를 전문으로 찾아내는 전투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와일드 위즐 (Wild Weasel : 야생 족제비)라는 별명이 붙었다(와일드위즐1 : F-100F, 와일드위즐2 : F-105F, 와일드위즐3 : F-105G). 그러나 이 전투기들이 전부 퇴역하면서 미군은 새로운 와일드 위즐이 필요하게 되었고 그 결과 36대의 F-4C를 개조, EF-4C 와일드위즐4를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만든 나머지 EF-4C 와일드위즐4는 적 레이더 및 지대공 미사일을 제거하는 임무를 하기엔 부족한 면이 너무 많았다.

 

 베트남전이 끝난 이후, 미 공군은 이미 생산된 F-4E중 116대를 개조, 신형 대 레이더 미사일(적의 레이더 전파를 역으로 추적하여 레이더를 공격하는 미사일)인 AGM-78 스탠다드를 달 수 있는 F-4G 와일드위즐5를 만들기로 했다. F-4G는 F-4E 시절 기수 밑에 달았던 기관포를 다시 빼버렸다. 대신 적의 레이더에서 나오는 전파를 분석, 그 레이더의 종류와 정확한 위치를 알려주는 장비의 안테나를 달았다(일반 전투기에도 이런 시스템이 달려 있으나 F-4G의 것은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제공했다). 기관포가 있던 자리 이외에도 기체 여기저기에 적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기 위한 안테나가 달렸는데, 그 수는 52개에 달했다.

 

 무장의 경우엔 원래의 F-4E와 마찬가지로 F-4G도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과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달 수 있었다. 그러나 F-4G는 어디까지나 적 레이더 기지와 지대공 미사일 기지를 제거하는 것이 주 임무였으므로 이런 공대공 미사일을 쓸 일은 별로 없었다. 한편 F-4G는 AIM-7 발사대 중 동체 앞쪽에 스패로우 대신 적 레이더를 교란하는 ALQ-119나 ALQ-141 전파방해장치를 달곤 했다.

 

 F-4G의 주력 무장은 AGM-45 슈라이크와 AGM-78 스탠다드였다. 이 미사일들은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이 적의 레이더 전파를 역으로 탐지하여 레이더를 파괴하는 미사일이었다. 나중에는 이것과 더불어 AGM-88도 F-4G의 주력 무장이 되었다. 베트남전 당시, 북베트남의 레이더 조작요원들은 대 레이더 미사일이 발사된 것을 감지되면 레이더를 그대로 꺼버렸다. 그러면 더 이상 레이더 전파를 수신하지 못하게 된 대 레이더 미사일들은 목표물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AGM-88은 이런 방식으로 대응할 틈도 주지 않기 위해 훨씬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래서 AGM-88의 이름도 HARM (High speed Anti Radiation Missile : 고속 레이더 전파 추적 미사일)이 되었다. 더불어 이 미사일은 적이 레이더를 꺼버려도 마지막으로 레이더 전파가 날아왔던 위치를 기억, 그곳을 공격하는 기능을 가졌다.

 

▲ 편대 비행중인 F-4G 와일드 위즐. F-4E와 비슷하지만 기수부분에는 기관포 대신 적 레이더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내는 안테나가 장착되었다. 사진속의 F-4G가 날개 밑에 탑재한 미사일이 AGM-88 HARM이다. 이 미사일은 개발비용을 줄이기 위해 미사일의 몸체 자체는 AIM-7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의 것을 그대로 썼다. 
  
 대 레이더 미사일은 어디까지나 적의 레이더만 부술 뿐, 적의 지대공 미사일 그 자체를 파괴하는 무기는 아니었다. 그래서 F-4G는 대 레이더 미사일가 함께 AGM-65 매버릭 미사일이나 각종 폭탄을 탑재했다. 적의 지대공 미사일 기지의 레이더를 날려버려서 일단 눈을 멀게 한 다음 이런 지상공격용 무기로 미사일 자체를 파괴했던 것이다.

 

 F-4G는 1990년대 초에 벌어진 걸프전에도 참가하여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걸프전 당시에는 주로 AIM-7M 스패로우 미사일과 ALQ-184 신형 전파방해장비, 그리고 2발의 AGM-88 대 레이더 미사일을 달고 작전에 참가하였으며 일정 지역을 날다가 적 레이더가 켜지는 것을 감지하면 그대로 AGM-88을 날렸다.

 

 이 전쟁에서 딱 1대의 F-4G가 추락했는데, 그 원인은 적의 공격이 아니라 연료부족이었다. 이 F-4G는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공중급유를 받기로 되어있었으나 급유기를 놓쳐버렸고, 다시 급유기에게 돌아와서 연료를 보급받기엔 이미 연료가 너무 모자랐다. 그래서 가까운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카르즈 기지에 비상착륙하려 했으나 근처에 짙은 안개가 꼈던 데다가 하필이면 때마침 활주로의 전기시설이 잘못되어 활주로 등마저 들어오지 않았다. 이 F-4G의 승무원들은 기지 근처를 몇 번이나 비행했으나 도저히 활주로를 찾을 수 없어서 결국 근처에서 비상탈출했다. F-4G는 걸프전 이후 미 공군에서 퇴역했다.

 

정찰용 팬텀들

 일반적으로 사진정찰기는 전투기를 개조해서 쓰는 경우가 많다. 빠른 속도와 민첩한 기동성으로 적을 피하여 목표지역을 촬영하고 돌아올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팬텀 역시 예외는 아니어서 다양한 정찰기 버전이 존재한다. 미 해군은 F-4B를 개조한 RF-4B를 운용했다. 기수부분의 레이더는 AN/APQ-99로 바뀌었는데, 이 레이더는 적 항공기를 찾는 것보다는 지형지물을 파악하는데 최적화된 물건이었다. RF-4B는 이 레이더를 가지고 지면 근처에서 낮게 날면서 전방의 산이나 기타 장애물이 없는지 확인했다. 한편 이 레이더는 종전 보다 훨씬 작았기 때문에 RF-4B는 기수를 더 가늘게 만들어서 공기저항을 줄일 수 있었다.

 

▲ 지상에서 점검중인 미 해병대 소속의 RF-4B. 기수가 좀 더 가늘고 길쭉해 졌다. 사진에서 기수 앞쪽, 17이라는 숫자 바로 앞에 있는 사다리꼴 부분이 카메라가 측면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진 창이다.
  
 RF-4B는 카메라를 장착하는 곳이 3군데 있었는데 여기에는 상황이나 목표물, 비행고도에 맞게 다양한 카메라를 장착했다. 이들 카메라는 조종사가 조작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회전했기 때문에 RF-4B의 비행경로가 목표물에서 빗나가도 카메라 각도를 돌려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또한 공기흡입구 근처의 동체 아래쪽 측면에는 AN/APQ-102 레이더 안테나가 달렸는데, 이 레이더는 RF-4B 옆쪽에 있는 지상 목표물을 감시할 수 있었다. 또 동체 허리 부근에는 AN/AAD-4라는 적외선 정찰 장비가 달렸다.

 

 RF-4B는 찍어온 필름을 착륙한 다음 꺼내서 사령관에게 넘기는 시간을 아낄 수 있도록 공중에서 낮게 날다가 필름을 정해진 장소에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팬텀에서 떨어진 필름은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1975년경에는 각종 전자장비와 정찰장비, 엔진 등이 업그레이드되었으며 베트남전이 끝난 뒤에도 계속 운용되다가 1990년 미 해군에서 전부 퇴역했다.

 

 미 공군은 F-4C를 도입할 때부터 정찰형 팬텀 (처음에는 RF-110A으로 계획했다가 후에 RF-4C로 이름이 변경됨)을 구매했다. RF-4C는 RF-4B와 마찬가지로 종전 팬텀에 비해 기수부분이 가늘고 길쭉해졌으며, 기수 아래 앞쪽, 기수 아래, 그리고 기수 좌우 측면에 카메라용 창이 달렸다. 여기에 각종 카메라를 장착해서 목표의 사진을 찍었는데, RF-4B와 달리 카메라가 돌아가거나 하진 않고 고정되었다.

 

▲ 우리공군이 운용중인 RF-4C(수직꼬리날개에 한국공군임을 뜻하는 ROKAF가 적혀있다). RF-4B와 달리 F-4C를 기반으로 만든 기체며 마찬가지로 기수분이 종전의 팬텀들에 비해 길고 가늘어졌다. 
   
 한편 RF-4C는 RF-4B와 마찬가지로 전투를 위한 레이더 대신 지형지물 탐색을 위한 레이더나 측면 탐지용 레이더를 탑재했다. RF-4C는 야간이나 기상이 나쁠 때를 대비해 후방동체 위쪽에서는 플래쉬 역할을 하는 섬광탄을 발사할 수 있었다. RF-4C도 RF-4B와 마찬가지로 카메라 필름을 공중에서 투하하는 시스템을 탑재했으나 비실용적이었기 때문에 실제로 쓰는 경우는 적었다. RF-4C는 처음에는 무장을 탑재하지 않았으나 후에 최소한의 자체방어를 위해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 RF-4C의 기수 아래부분. 앞쪽을 향해 카메라 창이 나있다(카메라창 좌우에 달린 까만색 돌기물은 적 레이더 전파를 감지하는 안테나다).
  

▲ RF-4C의 기수 옆부분. 사다리꼴로 된 부분은 투명한 창이며, 이 안쪽에는 카메라를 넣을 수 있다. 
  
 미 공군은 RF-4C만 운용했으나, RF-4C의 생산이 끝난 뒤에도 정찰형 팬텀을 찾는 해외고객은 계속 나타났다. 그래서 맥도널 더글라스는 F-4E를 정찰형으로 개조한 RF-4E를 해외 고객에게 판매했다. RF-4E는 기본적인 기체구조물이 F-4E와 같았으며 기수부분은 RF-4C 처럼 카메라 장착을 위한 형태로 바뀌었다(다만 F-4E 초기형 형상을 가져다 썼기 때문에 주익에 슬랫은 없었다). 또한 RF-4E의 카메라나 레이더와 같은 정찰용 장비 자체는 RF-4C와 비슷했다.

 

 RF-4E도 다른 정찰형 팬텀처럼 무장탑재능력이 없었으나 서독공군용 RF-4E의 경우에는 필요한 경우 지상공격임무를 위해 폭탄 등을 탑재 할 수 있도록 후에 서독이 자체적으로 개량했다. RF-4E는 미 공군은 사용하지 않았으며 서독공군, 이스라엘, 이란, 터키, 그리스, 등만 사용했다.

 

가변날개 팬텀

 F-4(FV)S는 실패한 해군용 F-111B 가변익 전투기의 대안으로서 맥도널이 F-4J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개발해서 미 해군에 제안한 형상이며 영국 공군에도 F-4M을 기반으로 개발한 가변익 팬텀 F-4M(FV)S를 제안했다. 주 날개는 펼치면 후퇴각이 19도, 접으면 70도로 바뀌였으며 장착위치는 동체 아래에서 위로 바뀌었다. 이에 맞춰 수평꼬리날개도 아래로 처진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수평인 형태로 재설계되었다. 한편 주날개가 동체 위로 가버리면서 착륙장치의 장착위치도 동체 아래쪽으로 바뀌었다.

 

 이 F-4(FV)S는 분명 종전 F-4보다 비행성능이 많이 향상될 것으로 보였으나, 미 해군은 이미 새로운 신형가변익 전투기인 그루먼사의 G303(후에 F-14가 된다)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영국공군도 가변날개 팬텀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결국 F-4(FV)S는 실제로 제작되지 않은 채 도면과 서류상에서만 존재했다 사라졌다.

 

카나드 장착형 팬텀

 1972년에 맥도널은 RF-4C의 시제기인 YRF-4C를 가지고 새로운 비행제어 시스템을 연구했다(이 YRF-4C는 F-4E의 개발시 임시로 F-4E 형태로 개조되기도 했던 기체다).

 

▲ 주날개 앞쪽에 또 다른 작은날개, 즉 카나드를 단 YRF-4C의 FBW 실험기. 이 항공기는 새로운 조종시스템과 카나드 덕에 종전 팬텀보다 더 비행성능이 좋아졌다.  
 
 이 새로운 비행 시스템은 당시에 막 연구가 진행되던 것이었다. 이는 조종사의 조종간과 조종면들 사이에 기계적인 유압장치나 강철케이블 대신 전선줄만 연결된, 바로 플라이 바이 와이어(FBW : Fly By Wire)시스템이었다. YRF-4C의 카메라 수납부에 이 플라이 바이 와이어를 위한 새로운 장비들이 채워졌다. 또한 기동성 향상을 위해 주날개 앞쪽에는 작은 조종용 날개인 카나드(Canard, 혹은 귀날개라고도 한다)가 달렸다. 이 카나드 장착형 YRF-4C는 카나드 및 플라이 바이 와이어 시스템의 연구를 위해 30회 정도 시험비행을 마친 뒤 퇴역했으며, 현재는 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 FBW 실험용 YRF-4C. 기수부분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F-4E가 아니라 YRF-4C를 개조한 항공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해외의 팬텀, 영국

 미국 이외에 처음으로 팬텀을 도입한 나라는 영국이었다. 본래 항공산업 강국이었던 영국은 가급적 모든 군용 항공기를 자체개발해 사용해 왔으나 1950년대 말, 새로운 군용기를 개발하기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상당히 전망이 밝았던 몇 가지 전투기 개발 사업을 포기해가면서(사라진 전투기 개발 사업에는 영국이 야심차게 준비하던 초음속 수직이착륙 전투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팬텀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영국군이 도입한 팬텀은 영국 해군을 위한 F-4K였다. 다만 영국해군은 F-4K라는 형식 부호는 사용하지 않았으며 팬텀 FG(F : 전투기(Fighter), G : 지상공격(Ground Attack)) .Mk.1 이라고만 불렀다. F-4K라는 명칭은 미국에서만 붙인 것이다(물론 정작 미국은 F-4K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 항공모함에서 막 발진하려 하는 영국 해군의 F-4K. 다른 팬텀에 비해 전방 착륙장치가 굉장히 늘어나있다. 또 동체 옆쪽에 작은 문이 열렸는데, 이는 신형 엔진이 워낙 많은 공기양을 요구하다보니 원래 있던 공기흡입구와 보조공기흡입구(이는 팬텀의 동체 아래에 있다) 만으로는 공기를 필요한 만큼 빨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만든 새로운 보조공기흡입구다.
 
 F-4K는 미 해군의 F-4J와 비슷하지만 영국 해군의 요구사양에 맞게 몇 가지 부분이 개조된 모델이었다. 제일 크게 다른 부분은 엔진으로, 롤스로이스에서 만든 RB.168-15R 스페이 201 터보팬 엔진을 달았다. 이 엔진은 팬텀의 J79 터보제트 엔진에 비하면 엔진 추력이 훨씬 강력하면서도 연료 효율은 더 좋았다. 다만 이 엔진이 제대로 된 힘을 내려면 더 많은 공기를 빨아들여야 했기 때문에 F-4K는 공기흡입구의 크기를 20% 정도 더 키웠다. 항공모함에서 이함시에는 전방 착륙장치(Nose Landing Gear)의 다리가 1m 가까이 더 늘어났다. 그래서 기수를 좀 더 위로 들어 올린 형태가 되었는데, 이것 덕분에 항공모함에서 더 짧은 거리에서도 이함이 가능해졌다.

 

 날개 앞전의 플랩은 F-4J의 슬랫 형태 되신 종전의 F-4B나 F-4C,D에서 쓰던 불어내기 방식의 경계층 제어 플랩을 사용했다. 다만 F-4B의 것 보다 좀 더 크기가 커졌으며 불어내는 공기의 양도 더 많아졌다(공기의 양 증가는 더 많은 공기를 빨아들이는 신형 엔진 덕이었다. 팬텀 2화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앞전 플랩의 불어내는 공기는 엔진 압축기가 빨아들인 공기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이다.). 더불어 F-4K의 수평꼬리날개는 아래로 처진 각도가 줄어들었고, F-4J의 것처럼 앞전에 틈이 추가되었다. 이함시 전방착륙장치의 다리가 늘어난다거나 고양력장치로 더 강력한 경계층제어 방식의 플랩을 사용한 것은 모두 이착함 속도를 늦추고 이착함에 필요한 거리를 짧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이는 원래 팬텀을 개발할 때 운용할 장소로 고려한 미 해군의 항공모함에 비해 영국 해군이 사용하던 항공모함 크기가 작았기 때문이다.

 

 영국 공군 역시 팬텀을 운용했다. 영국공군의 팬텀은 미국에선 F-4M, 영국군에선 팬텀 FGR Mk.II 였으며 R은 정찰(Reconnaissance)를 의미했다. 즉 영국공군은 팬텀을 전투기 및 지상공격기로서 뿐만 아니라 정찰용으로도 운용했다.

 

▲ 영국공군 소속의 F-4M. F-4K와 마찬가지로 동체 옆구리에 보조공기흡입구가 열려 있다. 수직꼬리날개 부분이 약간 형상이 달라보이는데, 각종 전자장비를 영국제로 채워 넣다 보니 안테나 형상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또 F-4M은 F-4K에 있던 늘어나는 전방착륙장치나 틈이 있는 수평꼬리날개 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좁은 항공모함이 아닌, 넓은 육상 기지에서 운용했기 때문에 굳이 이착륙거리를 줄이려고 애를 쓸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다. 영국 해군의 F-4K는 미 해군의 팬텀처럼 동체 밑에 기관포를 달 수 없었던 것과 달리, 영국 공군의 F-4M은 기관포를 달 수 있었다. 한편 R이 추가된 것에 걸맞게 영국공군의 F-4M은 정찰용 포드를 달 수 있었는데, 이 포드 안에는 측면 감시용 카메라와 레이더 등이 들어 있었다.

 

 후에 영국 해군은 팬텀 같은 대형 전투기 대신 해리어 같은 수직이착륙 전투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남은 팬텀을 전부 영국 공군에 넘겼다. 영국 공군은 이후에도 한 동안 팬텀을 지상공격을 중시한 전폭기로서 운용하다가 재규어 공격기를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팬텀을 공대공 전투를 전담으로 하는 요격기로 운용했다. 그러다가 영국공군은 새로운 요격기인 토네이도 ADV를 들여놓으면서 팬텀을 퇴역시켰다.

 

해외의 팬텀, 독일

 독일이 아직 동서로 나뉘어 있던 시절, 서독 공군은 새로운 전폭기 후보로 미라지 F-1, 록히드사의 CL-1200(파이팅팰콘 1화 참조), 그리고 팬텀을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팬텀 175대를 도입하기로 결정했다(당시 독일 공군은 팬텀의 1인승 버전도 고려했으나 결국 2인승 버전을 구매하기로 했다).

 

▲ 사진 속의 항공기는 독일 소유의 F-4F지만, 옆구리에는 미군기 마크가 붙어있다. 어찌된 일일까? 독일은 여견상 훈련비행을 할 만한 곳이 마땅치 않다보니 미국에 몇 대의 F-4F를 배치하고 이곳에서 훈련을 했다(현재는 F-4F 대신 독일공군 소속의 토네이도 전폭기가 훈련을 위해 여기에 배치되어있다). 
  
 독일의 팬텀은 F-4F라는 명칭이 붙었는데, 이 팬텀은 F-4E를 기반으로 몇 가지 기능을 삭제한 저가형 버전이었다. 독일 정부는 본래 값싼 전투기를 운용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F-4E의 비싼 기능은 빼버린 것이다. 레이더는 원래의 F-4E가 사용하던 AN/APQ-120과 유사하지만 AIM-7 스패로우 공대공 미사일 운용능력이 없었다. 즉 F-4F는 스패로우 미사일을 운용할 수 없었으며 공중전용 무기는 기관포와 AIM-9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뿐이었다.

 

 무게와 가격을 줄이기 위해 F-4E에 달려있던 7번째 연료탱크도 없어졌으며, 수평꼬리날개도 틈새가 없는 구식을 사용했다. 지상공격용 무기인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도 운용할 수 없었으며 공중급유장치 역시 없어졌다. 이렇게 이런저런 기능이 빠진 덕에 원래의 F-4E팬텀에 비해 1.5톤 가량 무게가 가벼워졌다. 한편 F-4F의 엔진 및 주요 부품은 독일에서 라이센스 생산한 뒤 미국의 맥도널 더글라스 공장으로 보내졌다.

 

 이후 1980년대 들어서면서 서독 공군은 F-4F의 살을 지나치게 뺐다고 생각, F-4F에 다시 AIM-7 스패로우 중거리 유도 미사일의 운용 능력과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 운용능력을 추가했다. 더불어 신형 사이드와인더인 AIM-9L을 운용할 수 있는 능력과 디지털 방식의 무장 관리 컴퓨터, 신형 전파방해장비, 신형 조종석 디스플레이 시스템 등을 F-4F에 추가했다.

 

 1983년 부터는 좀 더 대대적인 F-4F의 개량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통칭 ICE(전투효율 향상 : Improved Combat Efficiency) 사업이라 불리는 것으로 서독 공군의 F-4F를 EFA (유럽 전투 항공기 : European Fighter Aircraft)가 완성될 동안 계속 사용할 수 있도록 업그레이드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EFA는 후에 이름이 바뀌어 EF2000 유로파이터 타이푼이 된다).

 

 F-4F ICE의 레이더는 미 해군의 F/A-18 호넷 전투기에 달리던 AN/APG-65 레이더로 바뀌었으며, 이것과 더불어 F-4F ICE는 AIM-7보다 더 신형 미사일인 AIM-120도 쏠 수 있게 되었다. 이 외에 내부의 전자장비들이 대부분 디지털 방식의 신형으로 바뀌었다. F-4F ICE는 현재도 서독공군에서 운용중이며, 유로파이터 2000이 서독공군에 완전히 배치될 때 까지 주력 전투기로 자리 잡을 예정이다.

 

▲ 유로파이터와 함께 비행중인 독일 공군의 F-4F. 외형상으로는 F-4E와 잘 구별이 안간다.

 

해외의 팬텀,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미국 다음으로 많은 팬텀을 운용한 나라다. 이스라엘은 대략 240대의 F-4E 및 RF-4E(F-4E의 정찰기버전)을 1969년부터 1976년 사이에 도입했다. 이스라엘은 이집트, 시리아와 1973년에 전쟁을 벌였는데(통칭 욤 키푸르 전쟁) 이 때 팬텀은 이스라엘의 주력 전폭기로서 전쟁에 참여했다.

 

 이집트, 시리아 연합군은 신형 지대공 미사일인 SA-6를 장비했는데 이는 북베트남군이 가지고 있던 SA-2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기동성이 좋았고 전파방해를 걸기도 어렵다 보니 F-4E를 비롯한 이스라엘의 많은 전폭기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 미사일을 피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항공기들이 저고도로 내려가면 이번엔 이집트, 시리아 연합군의 SA-7 보병 휴대용 단거리 지대공 미사일과, ZSU-23 레이더 조준식 대공기관포가 날아들었다. 그러나 시리아, 이집트 지상군이 너무 깊숙이 진격함에 따라 자신들을 지켜주던 SA-6의 사정권을 벗어나버렸고, F-4E를 비롯한 다양한 이스라엘 전폭기들이 이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욤키푸르 전투에서 F-4E의 맞상대는 베트남에서와 마찬가지로 MIG-21이었으며 전투는 주로 저고도에서 벌어졌다. 저고도에서 상대방의 지상군을 공격하기 위해 공격기들이 날아다니면, 이 공격기를 쫓아내기 위해 요격기가 몰려오고, 이 요격기들을 다시 막아서기 위해 공격기들을 호위하던 전투기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투 양상이 잦았기 때문이다. 당시 이집트, 시리아 연합군의 조종사들은 전반적으로 이스라엘 조종사들에 비해 훈련양이 부족했고, 또 F-4E가 초기형 팬텀과 달리 기동성이 많이 향상된 기종이다 보니 공중전에서는 F-4E가 압도적이었다.

 

 전투 중 F-4E가 스패로우를 발사한 횟수는 17번으로 그리 많지 않았으며 (이중 7발 명중) F-4E의 주요 격추전과는 기관포, 사이드와인더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 그리고 사이드와인더를 기반으로 이스라엘에서 자체개발한 샤프릴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1982년에 이스라엘과 시리아가 벌인 레바논 전쟁에서 F-4E는 다시 한 번 활약했으나, 이스라엘 공군의 공중전 임무는 F-15, F-16 같은 신형 전투기들이 맡았으며 F-4E는 주로 지상공격 임무를 맡았다(당시 이스라엘이 도입한 F-15, F-16은 아직 지상공격능력이 없는 모델들이었다). 이번에는 사전에 입수한 시리아의 지대공 미사일 기지들의 정보를 통해 다양한 방법으로 교란해 가면서 철저히 공격했기 때문에 지대공 미사일에 의한 피해가 많지 않았다.

 

 이후 이스라엘의 F-4E는 커르나스(이스라엘말로 대형망치)2000이란 이름으로 대폭적인 업그레이드를 거치게 되었다. 레이더는 노선/UTC의 AN/APG-76으로 교체되었으며 항공기의 각종 시스템을 제어하는 임무컴퓨터도 이스라엘의 엘빗(Elbit)에서 만든 신형 디지털 컴퓨터로 바뀌었다. 조종석 역시 다양한 정보를 조종사가 빨리 알아차리고, 재빨리 주변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최신형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

 

▲ 이스라엘의 F-4E. 커르나스. 조종석 옆으로 길게 뻗어 나온 것은 공중급유용 연료관이다. 본래 F-4E는 급유기가 항공기에 직접 연료관을 꼽는 방식이지만, 이스라엘은 이 방식의 급유기를 운용하고 있지 않으므로 자신들의 사정에 맞게 공중급유장치를 개조했다.
  
 커르나스2000은 성능면에선 확실히 대폭 업그레이드되었으나 업그레이드 가격비용 역시 비쌌다. 당시 팬텀 3대를 업그레이드 하는 비용이 F-16A 2대를 새로 사는 비용과 맞먹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많은 논란이 일었다. 2004년경 이스라엘은 팬텀을 모두 퇴역시켰으며, 이중 일부는 터키가 사갔다.

 

해외의 팬텀, 그 밖의 나라.

 그리스와 터키 두 나라는 서로에게 자주 무력시위를 하는 군사적 분쟁이 잦지만 공교롭게도 두 나라가 운용하는 전투기가 비슷하다. 두 나라 모두 F-4E 팬텀을 운용중인데, 터키의 팬텀은 이스라엘의 쿠르나스와 같은 팬텀2000 업그레이드를, 그리스의 팬텀은 독일의 ICE와 같은 팬텀 ICE 업그레이드를 받았다.

 

 일본은 유일하게 팬텀을 라이센스 생산한 국가다. 일본은 1970년대 초부터 F-4EJ라는 이름으로 (J는 Japan의 약자) 팬텀을 일본 내에서 라이센스 생산했다. 다만 일본의 자위대는 타국을 공격할 수 없으므로 팬텀의 장거리 비행을 위한 공중급유장치가 빠졌으며, 다양한 지상공격용 장비도 빠졌다. 대신 몇 가지 전자장비는 자국산을 사용했으며 단거리 공대공 미사일도 일본이 자체 개발한 AAM-2를 사용했다.

 

 1982년부터 89년 사이에 일본은 F-4EJ 카이(改의 일본식 발음)라는 명칭으로 F-4E 90대를 개량했는데, 이 팬텀들은 레이더가 AN/APG-66J (F-16 초기모델에 들어가던 AN/APG-66의 일본 라이센스 생산 버전)로 바뀌었으며 공중급유장치도 다시 추가되었다. 더불어 내부 구조물도 더 보강되었다.

 

 이란은 미국의 주요 무기수출 고객이었으며, 미국을 제외하고 최초로 팬텀을 도입한 나라이기도 하다. 1968년부터 32대의 F-4D와 177대의 F-4E, 16대의 RF-4E를 구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란은 내부의 혁명으로 미국과 관계가 거의 단절되었고, 미국은 이란에 대한 무기수출 및 지원을 전면 중단했다. 이란은 팬텀의 부품을 자체 생산하거나, 자신들이 구할 수 있는 다른 것으로 바꿔가면서 팬텀을 계속 운용해 나갔으며, 이란-이라크 전투에서 팬텀이 이란 공군의 중핵 역할을 맡기기도 했었다. 이 외에 아직 팬텀을 운용중인 나라로 이집트가 있으며, 스페인과 오스트레일리아는 과거 팬텀을 도입했었으나 현재는 운용하고 있지 않다.

 

우리공군의 팬텀

 우리나라는 1960년대에 팬텀을 판매할 것을 미국에 요청했었으나 미국은 우리 공군이 팬텀 같은 크고 복잡한 전투기를 운용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로 거절했다. 그러나 1968년 초의 북한에 의한 청와대 습격사건과 미국의 정보수집선인 푸에블로호가 북한에 나포되는 사건 등, 북한의 무력도발이 심화되면서 미국은 우리 공군에 F-4 전투기를 인도하기로 합의했다.

 

 1969년 8월부터 미 공군이 운용 중이던 F-4D를 인도받았으며, 이로써 우리나라는 이란 다음으로 두 번째로, 미국 이외의 팬텀을 도입한 나라가 되었다. F-4D가 미 공군에 처음 인도된 것이 1966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당시로선 상당한 최신기종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주변에는 팬텀을 매우 강력한 전투기로 기억하는 어르신들도 있다.

 

▲ 지난 편에서도 봤던 우리공군의 F-4D 사진. 방위성금을 통해 도입한 기체다. 


 이후 1974년 부터는 F-4E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으며 일부는 신품을 구매한 것이었고, 일부는 미 공군으로부터 인도 받은 것이었다. 저번 화에서 언급하였듯 가장 마지막에 생산된 F-4E 팬텀도 우리 공군이 구매하였다. 우리공군도 독일이나 이스라엘처럼 F-4D, E를 대폭적으로 업그레이드하려 하였으며 독일의 F-4F ICE와 같은 방식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을 잡았었으나 1990년대 초반 무렵 몇 가지 문제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 구름 위를 비행중인 우리공군의 F-4E 팬텀. 아직 팬텀의 전체적인 색을 얼룩무늬 위장색에서 회색으로 바꾸기 전인, 70년대 말엽의 사진이다.
 
 그러나 전폭적인 개량은 하지 못했더라도 전혀 개량작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부 팬텀에 페이브 스파이크와 페이브 택 장비를 달 수 있도록 개조하였으며(이 장비들은 모든 F-4D, F-4E가 달 수 있던 것은 아니었다.) 적 레이더 전파 수신장치 같은 전자장비도 몇 가지 개량되었다. 또 우리 공군의 F-4E중 일부는 AGM-65 매버릭 공대지 미사일로 파괴할 수 없는 강화진지나 벙커를 공격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AGM-142 팝아이 미사일을 운용할 수 있도록 개조되었다.
 

▲ 동해쪽으로 소련의 정찰기(TU-95 폭격기의 정찰기버전)이 접근하자 이를 감시하기 위해 우리공군의 F-4E가 밀착비행 하고 있다. 
  
 적의 레이더 전파 교란용 장비는 초기에는 미국의 장비를 주로 탑재했으나 현재는 국산 장비인 ALQ-88K를 주로 탑재한다. 이들 전투용 팬텀 이외에 사진정찰형인 RF-4C도 미 공군으로부터 인도 받았으며, RF-4C의 경우에는 최근에 좀 더 개량된 전파교란용 장비인 ALQ-200을 탑재한다. 
 

▲ 전시중인 우리공군의 F-4E 팬텀. 공기흡입구 바로 뒤쪽의 동체 옆면에 사자머리가 그려져 있다. 이 사자머리는 우리나라의 모든 팬텀에 그려져 있는데, 그림을 그린 기지마다 그림체가 약간씩 다르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①, 전투기에 달린 거울

 팬텀의 조종석에는 거울(흔히 백미러라고 부르는 것)이 달려 있다. 이것은 자동차의 것과 비슷하게 뒤쪽의 상황을 살피기 위한 것으로, 특히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적기를 파악하기 위해 사용한다. 이런 전투기에 달린 거울은 2차대전때 쓰던 프롭 전투기에서도 자주 볼 수 있다. 이 거울은 비교적 간단하게 만들 수 있으면서도 조종사가 쉽게 뒤를 확인 할 수 있다 보니 최신 전투기들(F-15K, JAS-39, EF-2000, 라팔 등)의 전투기 조종석에도 여전히 달려 있다. 
 

▲ F-4의 캐노피 사진. 캐노피의 프레임에 달려 있는 길쭉한 물체가 바로 거울이다. 
 

▲ F-4M의 정면 모습. 캐노피 위쪽에 작은 네모난 물체가 보이시는지. 여기에는 후방석 승무원을 위한 거울이 들어 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②, 롤스 로이스 엔진의 이름

 영국의 팬텀에 사용했던 롤스 로이스의 스페이 엔진의 이름은 강에서 따온 것이다. 롤스로이스는 1940년대에 웰랜드 엔진을 시작으로 제트엔진이나 가스터빈 엔진에 강 이름을 붙였는데, 이는 엔진 내부로 공기가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상징했다.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 ③, 팬텀으로 팬텀 밀기

 베트남전 당시, 미 공군의 조종사인 파도(Bob Pardo) 대위와 아만(Earl Aman) 대위는 F-4 팬텀을 몰고 북베트남의 철강 공장을 공격하는 F-105 전폭기 편대의 호위 임무를 맡았다. 이들의 주 임무는 혹시 나타날지 모르는 북베트남의 미그기를 쫓아내는 일이었으나, 만약 미그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F-105와 함께 폭탄을 투하하기로 되어 있었다. (물론 미그기가 나타난다면 폭탄을 벌이고 공중전을 시작한다.)

 

 결국 목표지점에 다다랐을 때까지 미그기는 나타나지 않았고, 파도와 아만은 함께 폭탄을 목표물에 투하했다. 이때 지상에서 대공포들이 불을 뿜었고, 대공포에 의해 몇 군데 피해를 입었다. 파도는 조종석에 있는 몇 가지 경고등이 들어오는 것을 확인했으나 다행히 파도의 팬텀은 별 이상 없이 잘 움직였다. 반면 아만의 팬텀은 연료가 새기 시작했고, 1분도 안되어서 2톤 가까이 되는 연료가 새어 나가버렸다(참고로 팬텀은 기체 안에 약 6톤의 연료를 탑재할 수 있다).

 

 팬텀의 연료탱크는 몇 군데로 나뉘어져 있기 때문에 모든 연료가 바로 다 새어나가진 않았지만, 남은 연료의 양은 기지까지 돌아가기엔 너무 부족했다. 일단 근처에서 대기 중인 공중급유기까지 날아가려 했으나 이것마저도 불가능했다. 최소한 적진에서 벗어난 다음 비상탈출을 해야 할 상황이었으나 아만의 팬텀은 그럴만한 연료조차 남지 않았다.

 

 곧 아만의 팬텀은 연료가 바닥나 버렸으며, 글라이더처럼 활공했다. 그러나 팬텀은 글라이더가 아니므로 고도는 점차 떨어지고 있었다. 파도는 동료인 아만을 그대로 버리고 갈 수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신의 팬텀의 기수로 아만의 팬텀 꽁무니 부분을 밀어보려 했다. 그러나 아만의 팬텀에서 나오는 후류 때문에 파도의 기체가 흔들려서 정확히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파도는 이번엔 아만의 팬텀 아래 부분을 자신의 팬텀 등부분으로 공중에서 떠받친 채로 비행하려 했으나 마찬가지로 서로 기체가 너무 가까워지면서 후류 때문에 흔들림이 심해졌다.

 

 파도는 기지를 발휘해 무전으로 아만의 구속용 갈고리를 내리도록 했다(구속용 갈고리의 역할은 2화를 참조). 그리고 이 갈고리 끝부분에 자신의 팬텀의 전방유리창을 갖다 대기 시작했다. 만에 하나 잘못되면 갈고리가 유리창을 뚫고 들어와 파도를 덮칠 상황이었으나, 파도는 팬텀의 전방유리창이 2.5cm는 넘는 두꺼운 강화유리라는 점을 믿고 작업을 진행했다. 다행히 파도의 생각대로 팬텀의 전방유리창은 튼튼했다. 이자 파도의 팬텀은 아만의 팬텀을 전방유리창으로 받친 채 뒤에서 밀면서 계속 비행했다. 두 대의 팬텀이 한 쌍의 엔진만으로 비행한 것이다.

 

▲ 파도(Pardo) 대위의 일화를 그린 그림. 뒤쪽의 파도의 팬텀이 앞쪽의 아만의 팬텀을 밀면서 비행하고 있다. 파도는 후류 때문에 아만의 팬텀을 자신의 팬텀으로 직접 밀거나 하기 어렵자 아만에게 구속용 갈고리를 내리게 한 다음 이것을 자신이 타고 있던 팬텀의 전방유리창으로 받쳐서 밀었다.
  
 하지만 얼마 안가 파도의 조종석에 다시 경고등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왼쪽엔진에 화재경고가 들어온 것이다. 파도는 왼쪽엔진을 꺼버렸고, 경고등도 다시 꺼졌다. 그리고 왼쪽 엔진을 다시 시동 걸어도 경고등은 들어오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파도의 왼쪽 엔진 온도가 1000도 가까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는 정상온도보다 400도나 높은 수치였다. 아마도 대공포에 얻어맞으면서 엔진의 연소기나 기타 부품이 망가져서 화염에 새어나오는 듯 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엔진이 폭발할 수 있으므로 파도는 다시 왼쪽 엔진을 꺼버렸다.

 

 하나의 엔진으로 두 대의 팬텀을 버티기에는 엔진 힘이 너무 모자랐다. 당장 추락하지는 않았지만 1분에 600미터 꼴로 고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고도가 계속 떨어지다가는 얼마 안가 추락할 상황이었으므로 파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 번 왼쪽 엔진을 켜봤으나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파도는 엔진에 불이 붙거나 폭발하기 전에 다시 왼쪽 엔진을 껐다. 이들은 이런 상태로 약 10분간 비행하면서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공중급유기에 연락을 취해봤다. 하지만 공중급유기는 너무 멀리 있었고, 이들이 땅에 닿기 전에 급유기와 만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두 팬텀의 고도는 계속 떨어져서 이제는 겨우 2000m 밖에 안남은 상태였다. 약 2,3 분정도 더 비행하고 나면 두 팬텀은 땅에 닿아버릴 상황이었다. 다행히 공중급유기에게 연락을 취했을 때, 비상탈출에 대비해서 이들을 구출할 헬리콥터와 혹시 있을지 모를 적 지상군을 소탕해줄 A-1 스카이레이더 공격기가 대기 중이었다. 파도는 아만과 그의 후방석 승무원 호튼(Robert Houghton) 중위에게 비상탈출하라고 지시하고 기수를 들어올렸다. 아만과 호튼은 곧 낙하산을 펼쳤고 파도는 이들이 비상탈출한 것을 확인한 후 가장 가까운 기지로 팬텀의 기수를 돌렸다.

 

 그러나 파도의 팬텀 역시 기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연료가 다 떨어졌다. 워낙 장거리 임무였기 때문에 돌아오는 길에 연료보급을 받아야 했지만 이미 그럴 기회를 놓쳤던 것이다. 결국 파도는 자신의 후방석 승무원 웨인(Steve Wayne) 중위와 함께 비상탈출 했다. 이들 4명의 승무원은 각각 구조용 헬리콥터를 타고 무사히 구조되어 기지로 귀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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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주간 공군웹진 공감 / 필자 이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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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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