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항모가 아닌데 비행기가 뜨고내리는 배’ 소위 ‘항공전함’를 가진 역사는 의외로 깊다. 어찌나 길고 끈질긴지 일종의 ‘악연’ 마저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일본이 가진 ‘업보’ 기도 하지만, 항모를 가질 수 없으면 어떻게든 우회로를 만들어 버틴 끝에 실질적인 헬기 항모라도 보유하고 마는 집념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물론 끈기 자체는 본받을 부분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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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전함’ 이세급
 일본의 이런 ‘항모는 아니지만 항모처럼 쓰고 싶은(물론 항모에 비해 항공기 운용능력은 크게 떨어지는)’ 배의 원조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2차 대전중에 그런 배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이세(伊勢)급 전함 두 척(이세, 그리고 휴우가(日向))이다. 원래 이세급 전함은 후소(扶桑)급 전함의 3, 4번함으로 계획됐지만 후소급이 심각한 문제(주포 배치의 문제등)로 인해 두척만 만들고 끝나면서 후소급과는 다른 새로운 설계의 새로운 급으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물론 이세급도 후소급의 설계를 응용한 배이기는 하지만 무려 6개나 되는 주포 포탑(주포 구경 305mm)의 배치를 후소급보다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바꾸는 등 나름대로 개량을 거치기는 했다. 하지만 덩치에 비해 주포 숫자가 많다는 문제 자체는 변함이 없거니와(12문!), 부포가 원래 예정보다 구경이 작은(원래 예정은 152mm, 실제로는 140mm) 것으로 바뀌자 줄어든 화력을 보충한답시고 부포 숫자를 대폭 늘려(20문) 결국 배의 거주성 자체는 일본 해군 전함들중에서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였다.

 

▲ 이세급 전함의 제1번함 이세. 완공된지 얼마 안된 뒤에 촬영된 사진이다. 보시다시피 주포용 포탑만 해도 6개라는 화력을 자랑했지만 내부 공간의 문제등으로 일본 해군에서의 평가는 썩 좋은 편이 아니었다. 만재 배수량 약 40,000톤.

 

 1916년에 진수되어 1917년에 취역한 이세급 두 척은 이처럼 시작부터 썩 좋지 않았지만, 이런 문제를 어떻게든 만회하려고 일본 해군은 그 뒤로 거의 끊임없이 이세급을 개조했다. 특히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인해 전함의 신규 건조가 사실상 중단된 1920~30년대 사이에는 다른 일본 전함들과 마찬가지로 엄청난 수준의 개조공사를 받았고, 그 중에서도 1934~1937년 사이에 벌어진 대 개조 공사에서는 아예 배의 모양까지(길이도 뒤쪽으로 무려 6m나 증가) 뜯어고치는 엄청난 성형수술(?)을 받앗다. 물론 모양만 바뀐 것은 아니고 추진기관, 사격통제장치, 대공무장등 전반적인 능력의 향상이 있었다.

 

 이런 이세급이 새로운 삶(?)을 얻게 된 계기가 생긴다. 1942년 5월, 이세급의 2번함인 휴우가의 5번 포탑에서 대 폭발사고가 터진 것이다. 이 사고로 50여명이 목숨을 잃고 5번 포탑도 완전히 파괴됐는데, 설마 이 사고가 '항공전함'이라는 해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장르를 탄생시킬줄은 아무도 몰랐다.

 

 휴우가에서 대형 사고가 터진 직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은 항모 네척을 한꺼번에 잃는 참담한 수모를 겪었다. 이렇게 되자 항모 부족을 어떻게든 해결하기 위해 최신예인 야마토급 두 척을 제외한 모든 전함이 항모로 개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야마토급 다음의 주력함인 나가토(長門)급은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고 공고(金剛)급 역시 항모를 호위하는 역할로 필요하다는 판단에 제외됐다.

 

▲ 1930년대 초반의 이세. 다른 일본 전함들이 다 그렇듯 이세도 여러 차례 개수공사를 거치면서 외관, 특히 함교 부분의 디자인이 대폭 변경됐다.

 

 남은 배는 처음부터 문제가 많던 후소급, 그리고 때마침 한 척이 대형사고를 일으켜 포탑을 날려먹은 이세급이 가장 유력한 후보로 떠올랐다. 특히 포탑 하나가 이미 사라진 휴우가가 포함된 이세급은 철거에 손이 조금이라도 덜 간다는 이유 때문에 둘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재빨리 개조가 진행됐다.

 

 원래는 이세급 두 척을 제대로 된 항모로 개조할 작정이었으나 시간과 원자재(원자재는 건조가 중단된 야마토급 4번함을 해체해서 조달)의 부족이 문제였다. 사실 이미 완성된 전함의 윗부분을 다 뜯어내고 비행갑판과 격납고를 까는 것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시간이 없었다. 결국 3번 포탑부터 6번 포탑까지 철거한 다음 뒷부분에만 비행갑판을 까는 것으로 타협을 봤지만, 이것도 시간 부족으로 인해 결국 5번과 6번 포탑만 없애는 수준으로 줄었다. 또 비행갑판이 추가되는 김에 부포는 전부 철거되고, 대신 대공화력이 대폭 강화됐다.

 

 이렇게 해서 1943년 9월에 이세가, 11월에는 휴우가가 각각 새로운 장르인 ‘항공전함’으로 탄생한다. 앞에는 30.5cm주포가 8문이나 살아있지만 뒤에는 함재기가 뜰 수 있는 비행갑판이 마련된, ‘전함의 공격력과 방어력, 그리고 항모의 항공기 운용능력을 겸비한’ 항공전함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애당초 이세급은 일본 해군 자신도 무슨 거창한 꿈을 꾸느라 만든게 아니라 급한대로 항공기 운용능력을 얻고자 한 응급 개조를 받은 것 뿐이고, 그 결과 이세급의 항공기 운용능력에는 심각한 결함이 있었다. 비행갑판이 짧다는 것. 신형 캐터펄트(화약식)를 장착한 덕분에 이함, 즉 비행기를 띄우는 자체는 매우 빨랐지만 직접 착함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물론 수상기라면 띄운 다음 물에 착수시켜 크레인으로 끌어올리면 됐지만, 그렇지 않은 함재기라면(예를 들어 공격기인 스이세이(彗星)) 문제는 심각했다.

 

▲ 미드웨이 전선의 손실로 인해 발생한 항모부족 현상을 만회하기 위해 '항공전함'으로 개조된 이세의 모습. 다만 대전 말기의 혼란속에서 실제로 '항공전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임무를 맡은 일은 없다.

 

 일본 해군이 내놓은 해결책은 해결책이 아니라 ‘눈가리고 아옹’이었다. “어차피 항모 함재기는 전투를 하고 나면 격추되어 숫자가 줄어들테니 주변의 다른 항모에 착함한다”는 것. 즉 이세급은 비행기가 본격적으로 뜨고 내리는 배가 아니라 항모 함재기의 보충분을 실어나르는 ‘항공기 수송함’에 더 가까웠던 것이다.

 

 그나마 이처럼 제한된 항공기 운용능력도 활용할 기회가 없었다. 스이세이등 이세급에 탑재할 예정이던 함재기의 개발이 늦어졌을 뿐 아니라 그나마 완성된 기체들도 이세급에 탑재될 기회를 기다리지 못하고 실전에 투입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결국 1944년 10월에 필리핀에 출동했을 때 이세급 전함 두척은 모두 항공전함이 아니라 ‘보통 전함’으로 참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필리핀에서 강화된 대공화력을 살려 미 해군 함재기들의 맹렬한 폭격에서도 거의 피해없이 살아남은 두 척은 다음해 2월에 싱가포르에서 자원을 일본으로 운반하는 임무를 맡는다. 함재기가 없는 덕분(?)에 격납고가 텅 비어버린 점을 살려 이번에는 ‘수송전함’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 자원 수송작전은 2차 대전 일본 해군의 작전중 보기 드문 대 성공이었다. 적과의 전투가 목적이 아니라 ‘최대한 살아 돌아오는 것’이 목적이어서 그런지, ‘절반만 돌아와도 대성공’이라고 할 정도로 이미 제해권과 제공권 모두가 상실된 태평양 한 복판을 뚫고 이세급 전함 두 척은 물론 다른 참가함정 모두가 멀쩡하게 돌아온 것이다.

 

▲ 이세급의 제2번함 휴우가. 이 배도 이세와 거의 동시에 항공전함으로 개조됐다. 사실 이세급이 항공전함으로 개조된 이유 자체가 휴우가의 5번 포탑이 폭발사고로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었다. 오늘날의 휴우가는 이 배의 이름을 넘겨받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 해군의 행운은 이것으로 끝이었다. 이세급 역시 그 뒤로 일본을 벗어날 일이 없었고, 연료 부족으로 인해 결국 구레 군항에 정박한 해상 포대 역할을 수행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세급 전함 두척은 모두 미 해군 함재기들의 공격을 받아 침몰됐는데, 비록 깊이가 얕은 지점이라 가라앉지는 않았지만 군함으로서의 기능은 끝났다. 이세급 두척은 모두 전쟁이 끝난 뒤 해체되어 지금은 흔적도 없다. 참고로 이세와, 휴우가라는 이름은 메이지 유신으로 지금의 행정구역이 나눠지기 전에 사용됐던 지명이다.

 

꿩대신 닭? DDH
 2차 대전이 끝난 뒤 일본 해군은 해체되고, 그 뒤를 이어받은 해상자위대는 패전국이라는 입장도 있고 해서 한동안 항모 보유를 할 수 없는 처지였다. 하지만 항모를 보유할 수 없다고 해도 한때 세계 2위의 항모대국이던 일본이 항모를 가만히 포기하고만 있을 턱이 없었다- 실은 해상자위대는 창설 직후부터 최근까지 항모를 가질 꿈을 버린 일이 없었다. 사실 일본은 단순한 '군국주의로의 회귀'같은 상징적이고 정서적인 이유로만 항모를 다시 가지려 했던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는 이유도 -뭐 핑계없는 무덤 없지만- 있었다. 바로 대잠전이었다.

 

 2차 대전을 거치면서 적 잠수함과의 싸움에 항공기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은 누가 봐도 분명해졌다. 하지만 지구의 70%는 바다인 만큼 지상에서 발진하는 항공기만으로는 넓은 바다를 다 커버하기 힘들고, 특히 대잠전에 큰 비중을 두고 만들어진 조직인 해상자위대로서는 그러잖아도 만만찮은 면적의 일본 주변해역 대잠작전을 위해서는 먼 바다에서 대잠용 항공기를 운용할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도 어떻게 보면 당연했다.

 

 이 때문에 일본이 방위력 증강 계획을 짤 때마다 항모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늘 있었다. 게다가 미국 해군에서도 퇴역한 호위항모를 일본에 넘겨줘도 좋지 않겠느냐는 친일적 의견이 무시 못할 수준으로 나오는 등 어느 정도 실현 가능성도 있었다. 하다못해 호위항모 수준의 작은 배라도 그곳에서 소형 대잠초계기를 발진시킬 수 있다면 대잠작전 능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되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니 말이다. 게다가 헬기가 대잠전의 주요 장비로 부각되면서 헬기 해상운용을 위한 플랫폼은 해자대의 절실한 요구가 되어왔다.

 

▲ 완성된 직후의 하루나. 처음에는 대공무장도 없이 함포와 애스록만으로 무장했다.

 

 실제로 1950년대 초반에 미국으로부터 호위항모를 넘겨받아 운용할 계획이 있었고, 또 1958~1960년 사이에는 아예 에섹스급 항모를 넘겨받을 계획까지 있었지만 예산이라든가 정치적 문제등 여러 가지 난관에 봉착해 일본의 항모 도입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특히 1960년대에는 자체적으로 경항모를 건조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으나 결국 일본 방위청 내부의 논란 끝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원래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면 최소한 비슷한 것이라도 얻어지는 법. 아이팟을 간절히 원하면 하다못해 중국제 짝퉁이라도 손에 넣게 되는 법이다. 일본 해자대 역시 본격적인 헬기 항모는 얻지 못했으나 1970년대에 '항모와 구축함의 혼혈'인 '헬기 호위함(DDH)'을 얻게 된다. (참고로 '호위함'이라는 명칭은 사실상 구축함을 일본 해자대에서 부르는 이름이다)

 

 사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구축함에서 헬리콥터를 운용하는 일은 어렵다고 생각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충분히 가능하다는 사실이 차츰 입증됐고, 결국 일본도 정치적으로 논란이 많은 항모가 아니라 헬기 탑재가 가능한 구축함으로 만족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러나 기왕이면 보통 구축함 수준보다 헬기 운용능력이 더 높은 배를 원했고, 또 당시만 해도 해자대가 가진 구축함 대부분이 헬기 탑재능력이 없는 실정이라 기왕 만들 바에야 헬기 운용에 특화된 대형 호위함(구축함)을 만들기로 했다.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일본 최초의 DDH, 즉 헬기 탑재 호위함인 <하루나>급 2척(하루나와 히에이. 1973~1974년 취역) 이었다. 기준 배수량 약 5,000t, 만재 배수량 약 6,900t정도인 하루나급은 2차 대전중의 일본 경순양함에 맞먹는 배수량을 자랑했으며 실제로 비슷한 크기로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등에서는 '헬기 탑재 순양함'을 만들기도 했다.

 

 특히 하루나급은 3대의 탑재 헬기가 중소형도 아닌 대형의 씨킹(HSS-2)이라는 점에서도 항모가 아닌 배로서는 헬기 탑재능력이 매우 높은 편이지만, 엉뚱한 부분에서 부린 욕심들로 인해 항공기를 운용하는 배로서의 능력은 적잖이 깎아먹었다.

 

▲ 개장공사 이후의 하루나. 1985~86년 사이에 개장공사를 받아 2문의 팰랑스와 8연장의 씨 스패로 발사기등을 탑재, 대공 방어능력을 나름대로 갖추게 되었다.

 

▲ 아직 씨킹(HSS-2)계열이 주력기이던 시절의 하루나의 비행갑판. 하루나등의 해자대 DDH는 비행갑판 면적의 제약으로 인해 갑판에 나올수 있는 헬기의 숫자 자체는 2대였으나 실제로는 한번에 한대씩만 뜨고 내릴 수 있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로 현재는 탑재 헬기도 씨킹이 아니라 씨호크(SH-60)계열이다.

 

 욕심은 바로 배 자체의 무장이었다. 5인치 함포 2문과 8연장 애스록 발사기라는 무장을 갖추면서도 대형 헬기를 3대나 적재하려다 보니 결국 뒤쪽의 비행갑판 면적에 제약이 올 수 밖에 없었고, 그로 인해 한 번에 이착함이 가능한 헬기의 수량도 한 대로 국한됐다(더군다나 1980년대에 씨 스패로 미사일을 장착할 때 까지는 대공미사일 무장도 없었다!). 게다가 비행갑판과 격납고 모두의 면적 부족으로 인해 배 안에서의 헬기 정비에도 한계가 있었다.

 

 여담이지만, 처음에는 사실상 항모 형태로 계획되었고 이 계획이 취소된 뒤에도 원래는 함포를 5인치 하나만 달고 비행갑판을 널찍하게 쓸 예정이던 하루나가 함포 2문으로 결정된 이유는 당시만 해도 해자대에서 함포및 어뢰를 중시하던 세력이 우세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어떤 면에서는 구 일본 해군과 비슷한데, 결국 해자대도 구 일본 해군출신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게 된 만큼 ‘그 나물에 그 밥’ 이라고나 할까?

 

▲ 하루나급의 2번함인 히에이. 하루나급과 큰 차이는 없지만 배수량이 살짝 커졌다(약 100t정도). 하루나급은 특히 헬기 탑재함이 부족하던 70~80년대의 해자대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하지만 해자대 안에 헬기 탑재가 가능한 배가 매우 드물던 당시에는 이 정도만 해도 대잠전 능력에 큰 차이를 줄 수준이었고, 결국 하루나급 두척중 1번함인 하루나는 올해 3월 18일에야 퇴역(휴우가와 교대), 2번함 히에이도 내년까지는 현역에 머물 예정이다.

 

또 한번의 꿈과 좌절
 하루나급의 채택으로 항모 보유의 꿈을 아쉬운대로 달랜 해자대였지만 이 정도로 좌절할 생각은 없었다. 1972~76년 사이에 진행된 제4차 방위력 정비계획 기간중 또 다른 헬기 탑재함인 ‘헬기탑재 대형호위함(DLH)’이 기획됐던 것이다.

 

 이번에는 DDH수준을 훨씬 넘는 장대한 계획이었다. 탑재 헬기의 숫자도 6대로 늘고, 5인치 포의 숫자는 하나로 줄였지만 대신 스탠다드 함대공 미사일까지 장착해 함대방공까지 담당할 수 있는 성능이 요구됐다. 기준배수량도 8,700t에 달해 사실상 ‘항공순양함’이라고 불리워도 좋은 수준이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운이 없었다. 오일쇼크가 터지면서 일본 경제도 휘청거렸고, 결국 계획의 축소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어떻게든 새로운 배를 살려보려고 해자대는 척수도 하나로 줄이고 덩치도 줄인 축소판을 내놓았으나 어려운 예산 상황은 쉽게 타개하기 어려웠고, 결국 이 계획도 취소되고 만다.

 

▲ 하루나급을 만든 일본은 다시 한번 경항모 보유를 시도했으나 오일쇼크로 인한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문제가 겹치면서 결국 하루나급을 조금 더 크게 한 개량형인 시라네급 DDH를 두척 더 만들게 된다. 사진이 바로 시라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해자대의 헬기 탑재함 숫자는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었고, 결국 최후의 타협을 하게 된다. 하루나급의 덩치를 조금 키운 수준의 DDH 두 척을 새로 만들어 아쉬운대로 대잠 헬기 플랫폼을 확보하기로 한 것이다.

 

 이렇게 등장한 배 두척이 바로 <시라네>급 DDH이다. 배수량도 하루나급과 비교해 300t정도 차이가 나는 수준에 불과한데다 기본 디자인은 물론 무장까지도 하루나와 큰 차이가 없고 헬기 운용능력도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하루나보다 약 7년을 늦게 나온(1번함 시라네는 1980년 취역) 덕에 처음부터 씨 스패로 함대공 미사일과 20mm 팰랑스 CIWS가 달려있는데, 특히 씨 스패로 덕분에 해자대의 함정으로는 미사일 호위함 이외에 최초로 미사일로 무장한 배라는 영예(?)를 안았다.

 

 전자시스템 면에서도 상당한 발전이 있었다. 이 배에는 데이터링크 시스템이나 3차원 대공레이더등 자위대에서 최초로 시도되는 ‘시스템 함’이 되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해상자위대의 1970년대와 80년대를 가르는 분기점같은 배이기도 하다.

 

 다만 시라네는 최근에 매우 한심한 사고로 빈축을 사기도 했다. 2007년 12월 14일, 배의 CIC(전투정보센터)에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화재 자체도 문제였지만 불을 끄기 위해 바닷물을 쓴 것 때문에(바다 위의 배인 만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지만) CIC내부의 전자 시스템은 그야말로 만신창이가 되어버렸다.

 

▲ 시라네급의 2번함인 쿠라마. 1981년 취역. 시라네급은 하루나급보다 조금 대형이지만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 1982년에 취역한 하츠유키급 호위함의 1번함, 하츠유키. 하츠유키급으로부터 비로소 일본도 일반 구축함이 헬리콥터를 탑재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하츠유키의 헬기 탑재능력 자체가 이 시기에 대두된 88함대 구상(호위함 8척, 헬기 8대)에 맞춰 갖춰진 것이다.

 

 수리비용 200억엔, 수리 기간 2년이라는 막대한 손실을 안겨준 이 사고의 원인은 허가 없이 반입된데다 배의 전압에 맞지도 않는 중국제 음료수 냉온장고여서 더더욱 충격이 컸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한때 하루나의 수명을 연장시키고 시라네를 퇴역시켜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견해도 있었지만 결국 퇴역하는 하루나의 CIC설비를 시라네에 이식해 시라네를 한동안 더 쓴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참고로, DDH가 4척으로 정비되고 DD, 즉 일반 호위함(구축함)들이 헬기를 탑재할 수 있게 되면서 해자대는 유명한 ‘88함대’ 구상을 현실화한다. 즉 1개 호위대군(護衛隊群: 호위대의 집단)에 DDH한척(헬기 3대), DD 다섯척(헬기 5대), 그리고 DDG(미사일 탑재 호위함: 헬기를 싣지 않음) 두척의 총 8척의 호위함에서 8대의 대잠헬기를 운용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휴우가가 대잠헬기를(그 넓은 격납고와 갑판에도 불구하고) 세대만 싣는 이유도 기본 편제가 이렇기 때문이다.

 

1980~90년대
시대가 1980년대로 옮겨오면서 일본에서는 항모 보유의 꿈이 다시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일본 해자대의 목적이 ‘1,000해리 시레인 보호’, 즉 일본으로 향하는 해상보급로 방어를 보다 철저히 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이제 항모 보유의 ‘핑계’도 대잠전 헬기운용을 넘어 함대방공용으로 보다 노골적이 되었다. 말라카 해협등 항공자위대의 엄호와는 거리가 한참 먼 영역까지 해자대가 ‘진출’하는 만큼 항모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논리였다.

 

 특히 이 시기에는 미국이 일본에게 ‘역할분담’을 요구하며 재무장을 부추기던 시기이기도 한 만큼 해자대가 ‘이번에야말로’ 라며 항모에 러브콜을 보내는 것도 자연스러웠지만… 세상 만사가 그렇게 쉽게 되면 재미가 없다.

 

 당시 일본 해자대는 해리어 약 20대 정도를 운용하는 경항모, 즉 영국의 인빈시블급 정도 되는 배를 만들어 운용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포클랜드 전쟁에서 대활약한 해리어와 경항모의 조합이 일본의 예산 실정에 맞는 것도 있고, 또 ‘본격적인 중~대형 항모는 공격병기이지만 경항모와 해리어는 공격병기가 아니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일부의 주장도 아마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이 DDV, 즉 ‘항공기 탑재 호위함’ 구상(계획된 배의 형태는 아무리 봐도 경항모였지만, 끝까지 항모라고는 안 했다)은 미국의 ‘딴지’에 걸려 좌초된다. 이지스함 건조등 일본 해자대가 미 해군, 특히 항모전단을 호위하는데 도움이 될 계획에서는 지원을 아끼지 않은 미 해군과 미국 정부이지만 역시 본격적인 항모 건조는 아무리 경항모라도 ‘주제넘은 짓’이라고 생각한 듯하다.

 

▲ 오오스미급 상륙함. 일본이 항모형 배를 가지고 싶어 고민을 한 끝에 내놓은 편법적 해결책이다. 항공기 운용함으로서의 능력에는 제약이 많지만 그래도 항모형 배를 건조하고 운용하는 노하우를 쌓는 데에는 적잖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결국 해리어를 탑재한 경항모가 해자대에서 운용되는 모습은(우리 입장에서는 다행히) 보지 않게 됐지만, 그 대신 일본은 ‘항모 비슷하게 생겼지만 항모가 아닌’ 배로 항모형 상륙함을 골랐다. 때 마침 노후화되어 대체함이 필요하던 LST급(물론 2차 대전때의 미국제가 아니라 전후에 일본에서 건조한 배들이지만)들의 후계로 항모 형태의 배인 <오오스미>를 만든 것이다.

 

 오오스미는 헬기 운용조차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상당히 애매한 설계로 인해 어떤 면에서는 실패작일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일본에게 항모형 배를 만드는 경험을 쌓게 해 준 측면은 있다. 특히 항공기 운용능력에 가해진 많은 제약은 어쩌면 일본 자신이 주변국의 경계를 풀고 항모형 배를 일단 ’개시’라도 해 보려는 ‘꼼수’가 아니었을까?

 

꿈의 실현? 16DDH
 결국 일본은 항모 보유의 꿈을 착실하게 다져나간 끝에 2000년 12월에는 마침내 오늘날의 휴우가로 완성되는 ‘신형 DDH계획’을 공식적으로 착수하게 된다. 2004년, 즉 일본 연호로 헤이세이(平成) 16년에 예산이 통과되었다는 의미로 16DDH라고도 불렸던 휴우가는 계획 초기에만 해도 주변국의 반발을 우려해 ‘항모가 아닌 배가 될 것’이라는 정보가 많이 흘러나왔다.

 

 사실 2000년대 초반에 자위대가 배포한 완성 예상도는 16DDH가 ‘항모도 구축함도 아닌’ 형태로 만들어져 있었다. 배의 앞뒤에 비행갑판이 있지만 배 가운데는 거대한 상부 구조물이 자리잡고 있어 헬기는 앞뒤로만 따로 뜨고 내릴 수 있는 형태였다. 이래서는 해리어 운용이 불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헬기 운용의 효율조차 좋지 않은 것이 분명한 만큼 이것을 본 많은 관계자들이 의아해 했지만, 결국은 2004년의 예산 통과 직후에야 제대로 된 완성예상도(형태상 사실상의 경항모)가 공개되면서 이것이 연막전술임이 드러났다.

 

▲ 이제는 휴우가로 완성된 16DDH가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인지 발표되지 않았을 때 일본 방위청이 흘린 완성 예상도. 기본 형태는 항모형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함교 구조물이 갑판을 앞뒤로 완전히 분단(?)시켜 '항모도 구축함도 아닌' 매우 애매한 함형이다. 이 형태대로 완성됐다면 휴우가는 개조를 거친다한들 해리어나 F-35를 운용할 능력이 전혀 없는 '걱정할것 없는 헬기항모'가 되었겠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휴우가의 건조 시간은 실제로 일본이 비슷한 형태의 배를 꽤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점을 보여줄지도 모른다. 2006년에 건조가 시작된 배가 2007년에 진수식을 가졌는데, 2차 대전 이후 한번도 건조해본 일이 없는 항모의 형태임에도 불구하고 1년 만에 진수가 가능할 정도의 공사가 가능했던 것은 그만큼 어떤 배로 만들것인지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일단 완성된 휴우가는 고정익기(수직/단거리 이착륙기 운용도 포함) 운용능력이 없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일본이 휴우가 수준의 ‘헬기 항모’로 만족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미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도 ‘대지공격이 가능한 경항모 보유’의 필요성이 언급된 바 있기 때문이다. 수십년간 꿈꿔온 항모 보유의 가능성을 일본이 과연 순순히 버릴지는 의문이다. 다만 일본은 또 하나의 암초를 만난 것도 사실이다. 바로 ‘예산’이다.

 

 엄청난 액수의 국가 부채와 재정적자로 인해 일본의 국방예산은 증가율이 줄어드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액수 자체가 매년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이다. 이런 상황에서 예산의 우선순위도 MD나 해외파병등 다른 쪽에 조금씩 빼앗기는 추세여서 과연 엄청난 돈이 드는 항모 -경항모조차- 보유가 현재의 휴우가급을 넘어서는 수준으로 실현될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일본 해자대가 항모를 보유하고 싶어하는 의지만큼은 분명하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또 줄어들었다고 해도 여전히 우리 국방비의 2~2.5배 가까이를 쓰는 일본인 만큼 앞으로 일본의 항모 보유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지켜볼 필요는 충분히 있다. 특히 휴우가 운용으로 노하우가 쌓였다고 판단할 대략 10년쯤 뒤의 상황에서 일본의 판단이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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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월간 플래툰 2009년 5월호 / 홍희범


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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