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단총(SMG)과 영국군의 관계는 ‘철저한 무시’로 (그 뒤의 역사를 보자면 아이러니컬한 이야기이겠지만) 시작됐다. 사실 SMG가 처음 등장한 것은 1차 대전의 일이지만, 영국군이 이것에 어떤 영향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기술적으로나, 전술적으로나 ‘진짜 SMG’라고 불릴만한 것은 독일이 먼저 만들어 실전까지 투입했지만 이것은 1차 대전이 끝나기 직전인 1918년의 일이고, 전투에 투입된 SMG의 숫자도 얼마 되지 않아 연합군이 그 진가를 뼈저리게 느낄 정도의 실적은 거두지 못한 것이다. 물론 연합군이 SMG의 효과를 아주 무시한 것은 아니고,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독일군의 SMG보유를 일단 금지는 했지만 독일 경찰의 SMG보유는 허락했다. ‘뭔가 위협적이기는 하지만 심하게 위협적은 아닌’ 무기로 봤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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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뒤에 영국군이 SMG를 다시 접한 것은 1920~30년대 사이, 이번에는 미국의 오토 오드넌스社에서 영국에 톰슨을 좀 팔아보려고 접근했다. 그러나 당시 영국의 국방비는 거의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톰슨의 이미지는 ‘갱들의 무기’로 먹칠이 될 대로 되어있던 상황이었다. 애당초 근접전 이외에는 큰 효과가 없는 SMG에 대한 흥미도, 예산도 없던 영국군은 단박에 ‘우리같은 신사는 범죄자들이나 쓰는 무기는 안 쓴다!’고 거절할 판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와 나치의 등장으로 유럽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영국군도 차츰 생각을 바꿔야 했다. 비록 사거리와 살상력이 짧기는 하지만 일단 근접전에 들어가면 위력적인 SMG를 무시하기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영국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나치 독일은 재무장 과정에서 기관단총의 숫자를 늘리기 시작했고, 영국도 여기에 대항할 필요가 있었다. 이러니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영국은 급히 SMG를 찾기 시작했고, 없던 물건을 급하게 갖추려면 가장 쉬운 방법은 이미 있는 물건을 사오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갱들이나 쓰는 물건’이라던 톰슨을 미국에서 일단 급하게 주문했지만, 그 숫자는 턱없이 부족했다 - 사실 1939년까지 만들어진 톰슨의 숫자 자체가 15,000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 스텐 Mk.Ⅱ를 사격중인 윈스턴 처칠. 1941년 6월의 모습으로 아직 Mk.Ⅱ가 정식 테스트도 받기 전의 일이다. 이 때만해도 영국은 독일의 침공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2차 대전이 터지고, 결국 프랑스까지 나치 독일에 짓밟혔다. 영국군은 덩케르크에서 간신히 철수했지만 무기라는 무기는 모조리 - 말 그대로 소총까지 - 유럽 대륙에 던져놓고 온 영국군은 모든것이 부족했지만(덩케르크 철수 직후의 영국에는 소총 7만 정, 브렌 경기관총 2,300정이 존재할 뿐이었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자동화기 부족이었다. 이미 시대는 현대전의 시대였고, 볼트액션식의 소총보다는 뭐든 ‘연발로 나가는’ 무기가 심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중요한 전력이었지만 동시에 자동화기는 소총보다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이 더 들기도 한다.

 

 그나마 이런 자동화기들 중 SMG가 가장 싸고 생산이 쉽지만, 미국에서 막 도착하기 시작한 톰슨 SMG도 1940년에의 영국에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다(사실 영국이 톰슨을 미국에 처음 주문한 것은 1940년 4월이다!) 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영국군은 얼마 안되는 톰슨을 여러 부대에 돌려가며 홍보 사진을 찍거나 심지어는 나무로 모형 톰슨을 만들어 뿌리기까지 했지만 이런 허세가 진짜 적이 쳐들어오면 통할 턱이 없다.

 

 무기대여법(렌드-리스)으로 미국에서 톰슨이 들어오는 것만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없거니와, U보트 공격으로 인해 매일같이 수많은 톰슨이 대서양 밑바닥에 가라앉는 상황이었다. 결국 해결책은 단 하나. 영국이 직접 SMG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빨리, 아주 싸게. 특히 독일 공수부대가 언제 영국땅에 몰려들지 모르는 상황에서 SMG는 독일에 대한 반격은 둘째치고 본토 방어를 위해서라도 엄청난 양이 필요했다.

 

최초의 스텐
 일단 영국이 국산 SMG를 만드느라 채택한 첫 번째 방법은 ‘모방’이었다. 뭔가 만든 경험이 없다면 먼저 만들어진 물건을 베끼기라도 해야한다. 일단 영국은 1940년의 시점에서 톰슨 다음으로 흔한 형태의 SMG였던 독일의 MP28을 모방하기로 결정했다. 시간이 없으니 일단 원본을 조금 고치는 정도로 ‘영국판 MP28’이 완성됐다. 이 총이 바로 ‘란체스터’인데, 영국에는 불행한 일이지만 란체스터는 결코 급하게 빨리 만들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목제 개머리판이나 곳곳에 쓰인 황동 부품만으로도 생산성과 가격 모두에 악영향이 심했다. 그래도 일단 무기가 부족한 실정이니 생산은 됐지만, 누가 봐도 영국에 당장 필요한 SMG - 당시만 해도 영국에서는 ‘머신 카빈’ (즉 ‘완전자동 카빈’이라고 불렀던) 은 이런 ‘호화판’이 아니었다.

 

▲ 최초의 스텐, 스텐 Mk.Ⅰ탄창 삽입구가 고정식이기는 하지만, 소염기라든가 목제 핸드가드, 손잡이 등 이때만해도 나름대로 편의성을 고려했다. 그러나 1941~1942년의 영국은 이정도의 작은 배려조차 ‘사치’라고 생각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 스텐 Mk.Ⅰ을 들고 포즈를 잡은 홈가드 대원. 스텐 Mk.Ⅰ은 사진처럼 손잡이를 잡고 쏠 수 있었다. 스텐 Mk.Ⅰ도 그렇지만 스텐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옆의 탄창을 잡고 쏘지 못하게 되어있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이 규칙을 지키지 않는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란체스터의 설계가 끝나기도 전에 MP28을 기초로 하되 란체스터와는 다른 새로운 무기가 요구됐다. 새로운 무기는 비교적 값싸고 흔한 재료만으로도, 숙달되지 못한 노동자들, 특히 여성도 만들 수 있어야 했고 빨리 만들어야 했으며 병사들이 최소한의 훈련만으로 쏠 수 있어야 했다. 신뢰성은 그 다음 문제였고, 정밀도나 편의성은 그야말로 마지막에 고려할 문제였다. 그야말로 ‘마구 찍어 만드는’ 무기의 등장이었다.

 

 당시만 해도 낯설기 짝이 없던 이 개념에 도전한 것이 바로 엔필드의 왕립 조병창(RSAF)에 근무하던 설계기사 해롤드 J. 터핀과 병기계 장교 레지널드 V. 셰퍼드 소령이었다. 비록 ‘천재’소리를 들을 걸출한 인물들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 모두 총기에 대한 이해가 충분했고 합리적인 전문가였다. 특히 셰퍼드는 브렌 경기관총의 채택, 그리고 미국제 브라우닝 기관총의 영국 라이센스 생산을 성사시키는 등 이미 영국군용 총기의 역사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인물이었다.

 

 그들이 한 일은 어떻게 보면 간단했다. 비싼 재료는 최대한 없애고 필요 없어보이는 것도 최대한 없애거나 단순하게 만들었다. 개머리판은 쇠파이프를 휘고 용접해 만든 것으로 바뀌고, 목재 부품도 최소한으로 줄였으며 몸통 역시 훨씬 단순한 모양으로, 란체스터보다 낮은 품질의 재료로 만들었다. 가늠자도 철판에 구멍 하나 뚫은 지극히 단순한, 그야말로 총구의 방향만 대충 맞출 수준의 것이었고, 그 당시의 개념으로 보면 그야말로 ‘총도 아닌’ 투박하기 짝이 없는 무기가 탄생했다.

 

 이 새로운 SMG는 1940년부터 41년 사이의 겨울에 시제품이 만들어졌고, 테스트를 거쳐 ‘쓸만하다’고 합격평가를 받은 뒤 41년 3월 7일에 ‘스텐 Mk.I’이라는 정식 제식명칭을 받아 채용됐다. 1940년 12월 2일에 터핀이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순간부터 불과 3개월 만에 설계와 시제품 제작, 테스트, 채용이 모두 끝나버린 것이다. 그만큼 영국은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스텐(STEN)’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나왔을까? 의외로 간단하다. 셰(S)퍼드, 터(T)핀, 엔(EN)필드의 세 이니셜을 섞은 것이다. 아주 예전에는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서 그렇다’는 이야기들을 했지만, 나무 쓰는것도 아까워서 쩔쩔 매던 상황에 스텐레스같은 비싼 재료를 쓸 턱이 없지 않은가?

 

▲ 스텐 Mk.Ⅰ*. Mk.Ⅰ도 비싸다고 생각한 영국이 대량생산에 알맞도록 개량(개악?)한 총이다. 소염기도 없애고 목제 핸드가드와 손잡이도 없애는 등, 편의성을 희생해서라도 단가를 낮춘다는 스텐 ‘본연의 자세’에 더욱 충실하게 했다.

 

 최초의 스텐인 Mk.I, 그리고 개량형인 Mk.I*은 30만 정이 만들어졌고, 1942년의 디에프 상륙작전에도 투입되는 등 일찌감치 영국군에서 사용됐지만 뜻밖에도 공식적으로 채용이 발표된 것은 제식 채용으로부터 2년이나 지난 1943년의 일이었다. 정확한 이유는 아직까지도 불분명하지만, 1943년이면 이미 Mk.I이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스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Mk.II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주력, 스텐 Mk.II
 스텐 Mk.I은 한 자루를 만드는데 12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이것은 한 사람이 만든다고 가정할 때의 이야기지만, 영국군은 여전히 요구하는 총의 양에 비해 가진 총이 너무나 적었다. 생산성을 높일 방법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스텐 Mk.II였다. 개머리판도 더욱 단순해졌고, 앞에 있던 나무 손잡이는 없어지고 목재 덮개도 철판 프레스제로 바뀌었다. 총구에 있던 소염기도 없어졌고, 가늠쇠도 사실상 ‘살짝 튀어나온 쇳조각’으로 바뀌었다.

 

 물론 모든 것이 단순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탄창 삽입구는 쓰지 않을 때 아래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고, 총열덮개도 분해할 수 있었다(이것은 원래 Mk.II를 공수부대가 요구해 개발했기 때문이다 - 공수부대는 최대한 총의 부피를 줄여서 휴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Mk.I보다 Mk.II쪽이 재료의 소모로 보나 생산성으로 보나 유리했고, 결국 1941년 6월 9일자로 Mk.II가 정식 채용됐으며 생산도 급속도로 Mk.II쪽으로 옮겨졌다.

 

▲ 가장 많은 양이 생산된 스텐 시리즈의 대표작, 스텐 Mk.Ⅱ 사진은 초기형으로 장전손잡이의 모양이 약간 다르다.

 

 스텐 Mk.II의 개발은 1941년 3월 24일에 생산되어 석달도 안된 6월 9일에 채용이 결정될 만큼 초고속으로 이뤄졌지만, 생산 역시 그에 못잖은 경이적인 속도로 이뤄졌다. 전쟁중에 무려 260만정의 Mk.II가 만들어졌으며, 부품의 생산은 영국 전역에 걸친 수백곳의 공장에서 이뤄졌다. 이들 대부분은 원래 다른 기계부품을 만들던 공장이었고, 개중에는 헛간에 몇 명의 직공을 모은 ‘동네 철공소’수준의 공장들도 많았다. 이 모든 부품들은 매일같이 모여져 몇 군데의 주요 조립공장에 들어가 완성된 총이 되었다.

 

 물론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총에 문제가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채용 직전의 테스트에서 5,000발이 발사됐으며 그중 103번의 배출 불량, 세 번의 송탄 불량, 7번의 탄피 갈라짐, 한번의 부품 파손을 겪었다. 솔직히 신뢰성이 좋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셈이다. 나름대로 부품의 개량을 했지만 생산 도중의 품질관리가 종종 잘 이뤄지지 않았다. 동네 철공소까지 동원하는 부품 생산 과정에서 품질 관리가 완벽하기를 기대하는 자체가 무리였다. 전쟁 후반에 가면 그래도 저질 부품의 납품이 대폭 배제되는 등으로 상황은 꽤 개선되기는 했지만…. (사실 품질관리가 제대로 된 경우 고장날 곳이 거의 없는 스텐의 신뢰성은 매우 높았다. 초기 북아프리카의 사막에서 테스트된, 꽤 신경써서 만들어진 스텐 Mk.II의 시제품들은 톰슨보다 신뢰성이 높다는 호평을 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일단 숫자 그 자체만으로도 스텐의 존재가치는 충분했다. 신뢰성이 낮다고 해도 전투용으로 쓰지 못할 정도로 고장이 잦은 것도 아니었고, 품질 관리가 잘 된 스텐은 충분히 믿을만한 신뢰성을 보여줬다. 이런 총을 당시 돈으로 겨우 9파운드로 구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다. 참고로 ‘렌드-리스’ 법이 성립하기 전에 영국이 현금을 주고 수입한 톰슨은 한자루에 평균 50파운드였다. 스텐 Mk.II는 자연스럽게 영국군의 주력 SMG로 2차 대전에서 대활약했다.

 

▲ 스텐 Mk.Ⅱ 를 거의 완전히 분해한 모습. 총의 구조가 정말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스텐은 그 투박한 외관, 그리고 품질관리의 문제로 생긴 일부 불량품등으로 인해 병사들 사이에서 그리 좋은 이미지의 총은 아니었다. 실전부대에 배치된지 얼마 되지 않아 별로 반갑지 않은 별명들이 붙었으니 말이다. 스텐치(Stench)건, 즉 ‘냄새나는 총’, 10페니짜리 총, 울워스 원더(Woolworths Wonder: 영국에서는 유명한 저가 양판점 ‘울워스’에서나 만들법한 놀라운 싸구려라는 뜻), ‘배관공의 즐거움(Plumber’s delight: 꼭 파이프 뜯어서 만든 총 같으니…)’등 설계자가 들으면 결코 즐겁지 않을 별명들만 잔뜩 붙었다.

 

더욱더 싸게 : 스텐 Mk.III
 Mk.II의 생산이 이뤄지는 동안 런던 남서부의 ‘라인스 브라더스’사에서는 보다 싸고 단순한 스텐을 개발했다. 바로 스텐 Mk.III였다. Mk.III은 문자 그대로 ‘1회용’ 총으로 개발됐다. 쓰다가 망가지면 수리해 재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버려도 될 정도로 만드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부품의 숫자는 더더욱 줄였고, 몸통은 아예 철판을 휘어서 용접해 만드는 방식이 되었다. 총열도 아예 교환할 수 없게 몸통에 완전히 고정됐고, 내부 부속중의 몇 가지도 보다 생산이 쉬운 것으로 바뀌었다.

 

 그 결과는 극적이었다. 이제 한 자루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한 사람만 작업한다고 가정할 때 5시간 30분으로 줄었고(Mk.I은 12시간), 이것은 여전히 무기 부족에 시달리던 1942년 초반의 영국군으로서는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1942년 1월에 최초의 주문이 들어온 이래 9개월 사이에 영국군은 무려 150만정의 Mk.III을 주문했고, 비록 마지막 60만정의 주문은 취소됐지만 다 합쳐 90만정이 1년 정도의 시간 동안에 모두 완성됐다. 놀라운 것은 모든 Mk.III이 라인스 브라더스 한곳에서만 만들어졌고, 스프링과 총열을 제외한 모든 부품까지 이 회사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 스텐 시리즈 중 가장 단순한 버전인 스텐 Mk.Ⅲ. 라인스 브라더스라는 회사 단 한 곳에서 사실상 모든 부품의 제조 및 최종조립을 맡은 특이한 총으로 절정기에는 하루에 1,500정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 스텐 Mk.Ⅱ 의 조립공장들 중 하나인 BSA(Birmingham Small Arms)사의 공장모습. 스텐 Mk.Ⅱ 는 영국내에서 5개 공장이 최종 조립을 맡았으나 부품의 생산에는 수백군데의 공장. 혹은 철공소 수준의 가내수공업체가 종사했다. 남자들이 대부분 군대에 가버렸으므로 생산에는 이처럼 여성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동원되었는데, 처음에는 이들의 생산성이 매우 떨어질 것으로 우려됐으나 막상 실제로는 남성 노동자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들 손에 의해 260만정의 스텐 Mk.Ⅱ 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엄청난 생산성은 만만찮은 희생을 감수한 것이었다. 바로 신뢰성과 내구성이었다. 물론 원래 컨셉이 ‘쓰고 버리는’ 것이었으니 할 말은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영국군은 스텐 Mk.II보다 더 ‘허접한’ 무기를 지나치게 대량생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원래 예정대로면 150만정이나 생산되었어야 할 총이 90만정이 채 안되는 수준으로 줄어든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Mk.III가 그저 무의미한 총만은 아니었다. 적어도 1943년까지는 영국 본토 방어의 최전선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홈 가드’를 위한 요긴한 무장이 되었던 것이다. 스텐이 충분히 생산되기 전에는 홈 가드를 위한 무기로 톰슨이 지급됐지만, 곧 이어 만들어진 코만도 부대나 정규군들에 톰슨의 우선순위가 돌아가면서 홈 가드에 지급된 톰슨까지 넘겨져야 할 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대량으로 쏟아진 Mk.III은 아주 좋은 대체 수단이었다.

 

 어떻게 보면 ‘향토 예비군용 총’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스텐 Mk.III은 정규군에 귀중한 Mk.II가 충분히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줬다. 게다가 홈 가드의 수요를 충족시키고도 남은 Mk.III은 정규군 부대에도 꽤 돌아갔다. 비록 Mk.II만큼은 아니지만 영국군이 참전한 대부분의 전선에 Mk.III도 등장했고, 기록 사진등에 노출되는 빈도 역시 무시할 수준은 아니었다. 허접하기는 해도 나름대로 공은 세운 것이다.

 

‘귀족’스텐 : Mk.V
 스텐은 ‘품질보다 숫자’가 우선인 환경에서 태어난 총이다. 하지만 일단 숫자를 어느 정도 채우고 나면 품질에도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이제 Mk.II와 Mk.III이 그럭저럭 숫자가 갖춰지고 독일이 영국 본토에 침공할 걱정이 어느정도 사라진 1943년 후반이 되자 스텐을 개량하려는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아무래도 독일군에 대한 본격적인 공세가 시작되면 무기의 질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될 것이고, 멀리 보면 전쟁 뒤까지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 스텐 Mk.Ⅴ. 스텐 Mk.Ⅳ(4)는 시제품으로만 끝난 단축버전이어서 실전에 운용된 스텐은 스텐 Mk.Ⅲ(3)에서 곧바로 Ⅴ(5)로 넘어간다. 스텐 시리즈는 스텐 Mk.Ⅲ까지도 단순화-저가화를 향해 돌진하다 Mk.Ⅴ에서 갑자기 방향을 급선회, 고급화의 길을 걸었다. 앞부분의 목제 보조손잡이는 필요없을 때 쉽게 떼어낼 수 있으며, 실제로 전쟁 말기부터는 쓰이지 않게됐다.  

 

▲ 반대쪽에서 본 스텐 Mk.Ⅴ. 총구 부분은 리/앤필드 No.4용의 스파이스식 대검을 그대로 꽂을 수 있게 되었다. 참고로 스텐 Mk.Ⅱ에도 잘 쓰이지는 않았지만 전용의 스파이크식 대검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 이유로 등장한 모델이 바로 스텐 Mk.V였다. 1944년 2월에 채용된 Mk.V는(Mk.IV는 시험제작만 되었을 뿐 실제 생산은 되지 않았다) 말 그대로 스텐 시리즈의 고급화 버전이었다. 대부분의 2차 대전 참전국들이 갈수록 자국 SMG를 더욱 간단하고 싸게 만든 것과는 정 반대로 영국의 스텐 Mk.V는 더욱 비싸지고 생산성도 떨어졌다. 제작 시간만 해도 Mk.I의 12시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일단 외관부터 Mk.V는 Mk.III이나 Mk.II보다 ‘뭔가 있어’ 보였다. 목재 개머리판과 독립된 권총손잡이가 추가됐고, 총구에는 리/엔필드 No.4소총용의 가늠쇠가 추가된 것은 물론 이 소총용의 대검을 착검할 수도 있게 되었다. 심지어 앞부분에는 사용자가 원한다면 보조 손잡이까지 달 수 있었다. 이처럼 겉모습부터 크게 달라지자 스텐 Mk.V가 처음 지급될 때에는 병사들이 ‘스텐 Mk.II를 톰슨으로 바꾸려고 한다’고 착각했을 정도였다.

 

 물론 기본 구조는 Mk.II와 큰 차이가 없고 부품의 대부분도 호환되지만, 품질관리는 Mk.II와는 비교가 안되는 수준이었다. 당장 표면처리만 해도 Mk.II보다 훨씬 튼튼한 것으로 바뀌었고, Mk.II에서는 잘 이뤄지지 않았던 용접 자국의 처리까지 이뤄졌다. 실제로 이런 개량의 결과 채용 전에 실시된 테스트중 하나에서는 1만 발을 쏴서 52번의 배출 불량과 13번의 송탄 불량을 겪었다. 송탄 불량은 탄창, 아마도 테스트중에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Mk.II용 탄창의 탓이 큰 점을 감안하면 신뢰성이 Mk.II보다 향상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최초로 Mk.V를 지급받아 사용한 곳은 바로 공수부대였다. 영국 공수부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부터 시작해 마켓가든 작전, 독일 본토 공략에 이르기까지 Mk.V를 주력으로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Mk.V를 ‘공수부대용’으로 생각한다. 물론 2차 대전에서 공수부대가 Mk.V를 가장 많이 썼지만, 스텐 Mk.V는 분명 영국군 전체의 제식으로 쓸 것을 고려하고 개발됐으며 2차 대전 뒤에는 아예 스텐 Mk.II와 Mk.III를 모두 대체하는 영국군의 제식 SMG가 되었다(영국군에서는 여전히 SMG가 아니라 ‘머신 카빈’이라고 불렀지만 말이다). 실제로 6.25에 참전한 영국군이 가져온 스텐은 대부분이 Mk.V였다.

 

▲ 어쩌면 스텐 Mk.Ⅴ를 쓰는 가장 유명한 사진일지도 모른다. 1944년 9월에 네덜란드에서 벌어진 ‘마켓가든’ 작전 당시 오스터르벡의 파괴된 발전소에서 촬영된 제1 공수사단의 병사들로 흥미로운 것은 대원들 전원이 탄창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교범상에도 탄창을 잡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스텐 Mk.Ⅴ에는 아예 총 앞에 보조손잡이까지 마련했지만, 역시 스텐에서 가장 편한 자세는 옆으로 나온 탄창을 잡는 것인가?

 

 스텐 Mk.V의 생산량은 약 52만 7천 정으로, 스텐 Mk.II나 Mk.III에 비하면 많이 적다. 하지만 2차 대전이 끝나고 영국군의 병력 규모와 무기소모 모두가 크게 줄어든 만큼 이 숫자로도 기존의 다른 스텐을 대체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더군다나 1950년대 후반부터는 스털링 기관단총(스텐의 개량형으로 흔히들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따로 개발된)이 등장하면서 스텐 시리즈 자체가 더 이상 필요없게 됐고, 결국 1956년에는 ‘구식’으로 선언되어 차츰 일선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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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공= 월간 플래툰 2008년 8월호/ 홍희범 편집장


Posted by e밀리터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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